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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2012 본문

(발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2012

나무와 들풀 2025. 2. 18. 13:59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2012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진실한 시를 짓는 데 힘쓰거라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기지 않은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뜻이 세워져 있지 않고 학문은 설익었으며 삶의 대도(大道)를 아직 배우지 못하고 위정자를 도와 민중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니, 너도 그 점에 힘쓰기 바란다.

역사적 사실을 전혀 인용하지 않고 음풍영월이나 하고 장기나 두고 술 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서너집 모여 사는 벽지 시골 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일이나 인용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 아무쪼록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여지승람’, ‘징비록’, ‘연려실기술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처신에 대하여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여러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주어 따뜻하게 해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푼이라도 쪼개ㅓ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 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앟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거라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부업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남새밭 가꾸는 일이다.

허례허식을 경계하라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밭 갈고 길쌈하는 이야기나 입고 먹는 일에서 경계될 만한 교훈, 가축 기르는 법이나 전원 가꾸는 여러 이야기는 마땅히 치가의 근본에 넣고, 뜻을 세우는 일, 공부하는 일, 나쁜 일을 버리고 좋은 일을 따르는 것,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일, 책을 간수하는 일, 책을 베끼는 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일, 책을 아끼는 일에 관계된 이야기는 마땅히 기가(起家)의 근본에 넣을 것이며, 음덕을 쌓고 성내는 일을 절체하는 것, 분수에 만족하는 일, 곤궁함에 처해서도 느긋한 것, 일을 처리하는 것, 사물에 응대하는 것,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즐거워하는 것, 자신의

본분을 아는 것 등은 물론, 사욕을 막고 천리를 따르는 말들은 마땅히 보가(保家)의 근본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를 합하여 거가사본’(居家四本)이라 칭하고...

사람은 집안에 화기(和氣)가 있어야 한다. ..... 손님이 일어나 가겠다고 하면 만류도 하지 않고 보내면서 마루에 내려서지도 않는다면, 여러 사람이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며 필경 평생의 복을 망쳐버리는 일이 될 것이니 ...

같은 폐족이라도 무리를 짓지 마라. 무릇 폐족이라는 것은 서로 동정하는 마음을 품고 있게 마련이어서 서로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결국은 같은 수렁에 빠져버리는 수가 많은데,...

사대부가 살아가는 도리

(양계를 하다가)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보아야 하느니,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양계다. 만약 이()만 보고 의()를 보지 못하며 가축을 기를 줄만 알지 그 취미는 모르고, 애쓰고 억지 쓰면서 이웃의 채소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만 한다면 이것은 서너집 사는 산골의 못난 사람들이나 하는 양계다.

(독서는)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술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정약전은) 요즘 세상에 고을 사또가 서울로 영전했다가 다시 그 고을로 돌아오면 고을 백성들이 길을 막으며 거부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다른 섬으로 옮겨가려는데 본디 있던 곳의 사람들이 길을 막으며 더 있어달라고 했다는 말은 우리 형님 말고는 들은 적이 없다.

무릇 시의 근본은 부자나 군신, 부부의 떳떳한 도리를 밝히는 데 있으며, 더러는 그 즐거운 뜻을 펴기도 하고, 더러는 그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펴는 데 있다. 그 다음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항상 힘없는 사람을 구원해주고 재산 없는 사람을 구제해주고자 마음이 흔들리고 가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가져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해에만 연연하면 그 시는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시험)만을 위주로 하고 도의(道義)를 가르치지 않으니 붕우유신도 어긋나버렸다.

폐족은 백배 더 노력해야 한다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奇才)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자란 궁한 후에야 비로소 저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요점을 추려내어 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주견이 뚜렷해야 판단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

사대부의 기상이란

인간이 귀중하다는 것은 오로지 한점의 양심이 있어 그것 때문에 군자다운 행실을 할 수 있어서다. ... 그들의 거짓웃음과 쌀쌀맞은 이야기들을 내게 권하느냐. 그 권력자들이 벌떼처럼 다시 들고일어나 오랜 감정을 풀어보려고 나를 추자도나 흑산도로 쫓아보낸다 해도 나는 머리칼 하나 까딱 않겠다.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임금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거라

자기 몸을 엄정하게 닦아놓았다면 그가 사귀는 벗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이어서 같은 기질로써 인생의 목표가 비슷하게 되어 친구 고르는 일에 특별히 힘쓰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이르러서는

벗을 고르는 일이 바르지 못하여 화살 끝을 갈고 칼날을 벼리며 서로 시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가 옛날 친히 사귀던 사람들이었기에 이 점을 반성하고 있다.

벼슬살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아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릇 초야에서 진출한 선비가 가장 좋은 것이니 그때는 임금이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논이나 책 같은 글만 올리는데, 그 글은 충성스럽고 굳세거나 간절해도 괜찮다. 미사여구의 문장 솜씨로 한세상에 회자된다 해도 그것은 광대가 등장하여 우스갯짓을 연출하는 행동 따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임금의 잘못을 드러내라

언관(言官)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이 알려지게 하며 더러는 잘못된 짓을 하는 관리들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무릇 하고픈 일이 있다면 목표 되는 사람을 한명 정해놓고 그 사람의 수준에 오르도록 노력하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은 모두 용기라는 덕목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량의 근본은 용서해주는 데 있다.

옛날 어진 임금들은 사람을 쓰는 데 있어 적시적소에 배치하는 지혜가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온세상의 재화, 우환,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이는 일이나 한 집안을 뒤엎는 죄악은 모두가 비밀로 하는 일에서 생겨나게 마련이니...

편지 한 장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본 뒤에야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중국 요순시대의 고적법

! 그 누가 우리 백성들을 위해 이런 이야기라도 올려바친단 말입니까?

성인들의 책을 읽고 말씀 올립니다

(주역 공부를 하지만) 결코 점으로써 의심나는 일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니, 이러한 사리는 후세의 군자들도 반드시 알 것입니다.

형제간의 학문 토론

지금 감사가 하루에 세 번 받는 음식이 천자가 초하루에 먹는 음식보다 세갑절이나 더 많으니, 분수를 범하고 법을 업신여기며 조물주가 만든 생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이 이렇게 심할 수가 없습니다.

아우 약횡에게 들려주는 말

맨 먼저 가난한 선비의 집을 찾아가 자상하게 병세를 살펴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준 다음에 여타의 귀한 집을 찾아가는 것이 옳다.

 

4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윤종문에게 당부한다

... 그러나 독서 한가지 일만은, 위로는 성현을 뒤따라가 짝할 수 있고 아래로는 수많은 백성들을 길이 깨우칠 수 있으며 어두운 면에서는 귀신의 정상(情狀)을 통달하고 밝은 면에서는 왕도와 패도의 정책을 도울 수 있어 짐승과 벌레의 부류에서 초월하여 큰 우주도 지탱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인 것이다.

윤종억에게 당부한다

.... 그리고 먹고 남은 여분은 비온 뒤마다 바랜 잎은 따내고 먼저 익은 것을 가려서 저자에 내다 팔고, 혹 월등하게 크거나 탐스러운 것이 있으면 각별히 편지를 써서 가까운 벗이나 이웃 노인에게 보내어 진귀하고 색다른 것을 맛보게 한다면 이것도 후한 뜻이리라.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당부한다

매양 보면 가장 어리석은 이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태연히 평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오로지 서명만 근엄하게 하지만, 노회한 간인은 헤어리는 데 익숙하여 귀신같이 허실과 명암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모르니, 장차 무슨 도움이 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