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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본문
역자 서문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말은 우리를 현실과 연결시켜준다. 나치스가 언어규칙을 만든 이유는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말의 유용성은 말이 현실을 알게 하여 사람에게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아렌트는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악의 평범성과 타자 중심적 윤리(정화열)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 사유할 능력이 없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했을 때, 의미한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의 복수성에 있어 ‘평등’의 다른 측면인 차이. ‘차이’가 없으면 ‘소통’도 필요 없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월처가 차이란 인간관계에서 관용을 필수적으로 만드는 반면 관용은 차이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한 것은 논박의 여지가 없다.
아이히민은 타인 또는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또는 ‘행위’할 능력, 또는 더 잘 말하자면 도덕행위를 ‘수행’할 능력도 없다.
퀸시 라이트는 전쟁에 대한 기념비적 저술에서 인류의 문명 즉 인류의 야만의 연대기에서매 2년마다 한차례씩 중요한 전쟁이 있었음을 오래전에 발견했다. 우리는 전쟁에 마취되어버렸거나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전쟁을 일상적인 인간의 삶의 한 측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평범하게 되어버렸다. 아렌트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가 메시지가 되어감에 따라, 우리는 더욱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없이 만든다. 지구상의 인류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잔인함, 죽음, 고통을 끼치는 데 이를 것이라고 필자가 두려워하는 ‘무사유’를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갖는 데 이르게 될 것이다.
독자들께 드리는 말
제2장 피고인
아이히만은 1950년에 입안된 나치스 및 나치 협력자 처벌법 “이러한 법죄 가운데 하나라도 범한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라고 규정. 각각의 죄목에 대해 아이히만은 ‘기소장이 이미하는 바대로 무죄’라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의 변호사 세르바티우스는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다. 아이히만은 “나치 정권 아래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라는 점에서 정상이었다. 하지만 제3 제국의 조건하에서는 오직 ‘예외’들만이 ‘정상’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생각될 수 있었다.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그가 살았던 세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에 독일 국민 전체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히틀러나 괴벨스가 만든 ‘독일 민족을 위한 운명의 전투’라는 구호였다. 이 구호는 자기기만에 빠지게 했다.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고 암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운동이지 독일이 아님, 전쟁은 독일인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이들은 적을 전멸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전멸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검찰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괴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광대라고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제5장 두 번째 해결책: 수용
그들의 야심은 같은 것, 즉 가능한 한 많은 유대인을 죽이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옮겨 놓을’ 수 있는 어떠한 지역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은 전멸뿐이었다.
제6장 최종 해결책: 학살
나치 고위층 가운데 양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재능이 있었던 요원은 힘러였다.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 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엇다. 힘러는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군대의 후방에서 작전을 수행한 돌격대는 유격대 전쟁을 핑계로 정당화되었는데 그 희생자들은 결코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짜 유격대 외에도 러시아 관료들과 집시들, 반사회분자들, 정신병자들과 유대인을 다루었다.
기만과 은폐를 위해 교묘하게 고안된 다양한 ‘언어규칙’ 가운데 이처럼 히틀러가 첫 번째 전쟁을 벌이는 데 살인자들의 정신상태에 작용한 것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여기서 ‘살인’이라는 말 대신 ‘안락사 제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가 여하튼 분명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조금 반어적인 아니었는가를 경찰 심문관이 물었을 때 아이히만은 이 질문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제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일반적인 그림’에서 빠진 가장 심각한 부분은 나치 지도자와 유대인 당국 사이의 협력을 증언해줄 증인이 빠진 것이다. 따라서 “왜 당신은 결국 자기 자신의 파괴로 이어지는 당신 자신의 민족의 파괴에 협력했나요?”라는 질문을 할 기회가 빠졌다. 모든 진실은 현지 및 국제적 수준에서 유대인 공동체 조직들과 유대인 정당, 그리고 복지 조직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유대인에게는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거의 예외 없이 이들의 리더십은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나치스와 협력했다. 모든 진실은 만일 유대인이 정말로 조직이 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이 있었겠지만 희생자들 전체가 400만, 500만, 600만에 달할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8장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 의무
반제회의가 있은 지 2년 이상이 지난 후 당시 힘러는 유대인을 잘 대우하라는 제대로 된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그의 ‘가장 안전한 투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히만에게는 자신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는 경험이었음이 분명했다. 제3제국의 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악을 인식하게 되는 특질(유혹이라는 특질)을 상실했다. 수많은 독일인들과 많은 나치스, 아마도 엄청난 수의 그들은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이웃이 죽음의 장소로 가지 않도록 하려는(유대인은 그들이 알고 있는 운명의 장소로 이동되었기 때문. 비록 물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소름끼치는 세부사항을 잘 알지는 못했겠지만),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함으로써 이 모든 범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는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맙소사, 그들은 그러한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워버렸다.
제9장 제국으로부터의 이송: 독일, 오스트리아 및 보호국
1943년 6월 30일, 히틀러가 희망한 것보다 한참 지난 뒤에 제국(독일, 오스트리아 및 보호국)에서 유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포가 이루어졌다. 정확한 수치는 존재하지 않으나 독일 통계에 따르면 42년 1월까지 이송되었거나 이송될 사람들의 수 26만 5,000명 가운데 탈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러한 아주 어려운 문제들이 오직 무자비한 강인성에 의해서만 우리 민족의 영원한 안전이라는 이해관계 속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사태의 본질이다.”
제11장 발칸 지역으로부터의 이송: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크로아티아인들은 나치스에게 각 유대인의 이송비로 30마르크스씩 지불했다. 그 대가로 그들은 나치스에게 각 유대인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 독일의 공식적 ‘점령지 원칙’에 따르면 이것은 모든 유럽 국가에 적용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에 따라 국가는 자신의 국경 안에 머무르다 살해당한 유대인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지역의 유대인 가운데 살아남은 1,500여 명(유고슬라비아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5퍼센트)은 분명히 모두가 이처럼 고도로 동화된, 그리고 극도로 부유한 집단이었다.
붉은군대의 진주와 더불어 반유대 법안들이 폐기될 때까지 불가리아 유대인도 이송되거나 자연사가 아닌 죽임을 당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제12장 중부 유럽으로부터의 이송: 헝가리, 슬로바키아
힘러가 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유대인에게 몸값으로 200만 내지 300만 달러를 받고 살려준다는 것. 아이히만이 이 일을 하는 가운데 재정적으로 이익을 취했다는 점은 입증할 수 없었지만 이전에 알지 못한 온갖 종류의 사치를즐겼다.
제13장 동부의 학살센터들
나치스가 동부라고 말할 때 이는 폴란드와 발틱 연안 국가들 그리고 점령된 러시아 영토를 의미했다. 동부 유대인에 대한 조치는 반유대주의의 결과일 뿐 아니라 포괄적인 인구 정책의 일부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일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폴란드인들은 유대인과 동일한 운명(즉 종족 학살)을 겪었을 것이다.
제14장 증거와 증언
전쟁이 끝나는 마지막 몇 주 동안 친위대 관료들은 주로 증명서를 위조하고 또 6년간의 체계적인 살인을 입증할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파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훈이란 공포의 조건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종 해결책이 제안된 나라들의 교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 일이 어디서나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 지구가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남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도 필요하지도 않고 또 그 이상의 것이 합리적으로 요구되지도 않는다.
제15장 판결, 항소, 처형
(아이히만은) ‘다른 죄목과 함께’ ‘유대인에 대한’ 범죄를 범했다. 1)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살상함으로써’, 2)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신체적인 파멸로 이끄는 상황으로’ 몰아감으로써, 3) 그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끼침’으로써, 4)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유대인 여성들의 출산을 금하고 임심을 방해함’으로써 이 민족을 파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에 대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4가지 기소 항목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는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유죄인 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집시들의 학살에 대해서도 유죄였다.(인류에 대한 범죄)
일반적으로 살상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아이히만은)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 그는 희생자였으며, 오직 지도자들만 처벌을 받아야 했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성서를 읽어주겠다는 도움을 거절했고 검은색 두건을 머리에 쓰는 것도 거부했다. “잠시 후면,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 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에필로그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가장 일반적으로 묻는 물음인 “그것이 무슨 유익함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직 다음과 같은 대답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정의를 행할 것이다.” 악을 범한 자가 법정에 서야 하는 이유는 그의 행위가 공동체 전체를 어지럽혔고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지, 민사재판의 경우에서처럼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개인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은 아니다. 형사재판에 필요한 보상은 전적으로 다른 본질을 갖고 있다. ‘보상’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정치체 자체다. 말하자면 본궤도에서 벗어나 복구되어야 하는 것은 일반적인 공적 질서인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는 데 대해 반대하며 국제재판소를 선호한 목소리 중 카를 야스퍼스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점과 “따라서 판결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법정에서만 내려질 수 있다” “이 범죄는 일반적 살인 그 이상이면서 동시에 그 이하다,” 그래서 비록 이것이 ‘전쟁범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국가들이 그러한 범죄가 지속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인류는 분명 파멸될 것이다.”
일단 어떤 특정한 범죄가 처음으로 발생한다면 처벌이 무엇이든 간에 그 범죄의 재출현은 그의 최소의 출현보다도 훨씬 가능성이 높다. 근대의 인구 폭발과 기술적 장치들의 발견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두려운 사실, 게다가 기술적 장치들은 자동화를 통하여 심지어 노동을 보더라도 그 인구의 많은 부분을 ‘잉여’로 만들어버릴 것이고 또 핵에너지를 통하여 마치 히틀러의 가스 시설을 사악한 아이들의 서투른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이러한 이중적 위협을 처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은 우리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후기
(아이히만은)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곤ㄴ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경찰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앉아 자신이 마음을 그 사람 앞에 쏟아부으며 어떻게 자기가 친위대의 중령이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기가 진급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을 하면서 4개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력의 결여 때문이었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였다.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수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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