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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하영 외, 벗 본문
‘순종하는 신체’ 덕분에 3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로 운 좋게 아무 일 없이 지냈다. 인간을 복종시키기 위해 신체에 가해지는 유무형의 억압들을 푸코 선생님은 「감시와 처벌」에서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17~18세기를 거치며 억압의 방법은 다양한 규율로 변하며 ‘복종되고 훈련된 신체’, ‘순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학교를 시작으로 구호시설, 군대, 종교시설 등으로 확장시키며 사회 전반에 걸쳐 촘촘하게 엮은 결과 근대적 휴머니즘의 인간이 탄생했다고 한다.
푸코 선생님의 말씀에 의지해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유독 ‘순종하는 학생’이 많은 까닭을 생각해 보면 일단 순종에 길들인 시간이 다른 학교급보다 길다. 다음으로, 사회적으로 ‘대입’이라는 시험 장치가 있다. 푸코 선생님은 ‘시험은 감시하는 위계질서의 기술과 규격화를 만드는 상벌 제도의 기술을 결합시킨 것’으로 ‘규격화하는 시선’이고, ‘자격을 부여하고 분류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감시’라 했는데, 대입 시험은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인정하는 장치이므로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기꺼이 순종을 택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푸코 선생님의 글이 어른거렸다. 책을 출판한 목적은 푸코 선생님의 어록을 상기하라는 게 아니댜. 2023년 여름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과 그것이 사회적으로 던진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답한 ‘학생 생활지도 고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2023년 교사의 자살이 교육계에 던진 충격은 교사뿐 아니라 온 나라를 덮었다. 그러나 그것의 원인을 찾기 위해 충분히 논의하거나 해결하려고 진지하게 고민했다기보다 각자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이익에 가까운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닌지. 그 결과 아주 졸속적인 ‘학생생활지도 고시’ 하나가 학교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무기력한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마치 출근할 때 숨 쉴 공간조차 없는 것 같은 빡빡한 지하철역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떠밀려 차에 올라타서 옴짝달싹 못하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 같은 느낌? 이 책은 뒤늦게나마 조잡한 해결책인 ‘고시’의 문제점을 짚고, 앞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논의할 물꼬를 트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저자들은 초등교사가 자살한 일의 원인이 진짜 학생들과 양육자들의 악성 민원 때문만인지, 또한 교권 침해가 과연 학생 인권 조례 때문인지를 묻는다.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다양한 원인 중에 과중한 업무 부담이나 교사를 고립시킨 학교의 다른 조건들도 있었을 텐데, 왜 교사가 느끼는 주된 원인을 학생 인권으로 돌린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고시’에서 이야기하는 ‘교권’이 너무 한정적이며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나 학교장, 교육 당국으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을 막기 위한 권리는 없이 그저 방어권이 전부인 교권 속에 탄생한 ‘고시’는 교사와 학생의 갈등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생활지도 개념 자체가 황국신민화 교육에 맞는 신체와 행동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 학교 탄생의 비극이 갖고 있던 문제가 여전히 지금까지 교육을 발목 잡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진지한 고민 없는 땜질 처방과 같은 ‘생활지도 고시’가 아닌 교육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쳐 인권이 존중되는 과정에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학교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강제적인 수단을 써서 학생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학교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존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익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참여권도 입법권도 실질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채, 학생들을 사법적인 학칙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며 이는 교사라는 인격을 통해 구현되고 집행되기에 교사와 갈등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학생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바탕으로 합의하여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말을 듣고 ‘누가 모르냐?’, ‘학교가 그런 것을 할 만큼 한가하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언어’이며, 강제적인 수단을 써서 학생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토론이 시작된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격리해 내는, 순종적인 신체를 재생산하는 방식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상상하려는 시도이다.‘라고 한다.
빠르게 처리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하지 못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렇다면 저자들의 뻔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학교에서 교사들과 한번 토론이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 학생들만 토론에 미숙한 거 아니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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