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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최석태저, 아이세움 본문
황소의 혼을 사로잡은 이중섭, 최석태 지음, 아이세움 출판사, 8000원
중학교 국어 1학년 2학기 1단원에 나오는 화가 이중섭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권한 책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중섭 전기문이 지면 상 짧을 수밖에 없기에 이중섭의 그림과 이중섭의 일생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추천한 책이었다.
교과서엔 이중섭이 평안남도 평원군의 부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다니며 임용련 선생님을 만나 미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고 소개 되어 있다. 또한 오산 학교에서 아로 새긴 민족의식이 평생 이중섭의 미술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산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마사코를 만나고, 그 시절에 미술가 협회상을 탔으며 귀국하여 결혼한 후 형님과 첫 아이들를 잃었다고 소개한다.
대한민국의 비국적인 현대사는 이중섭의 삶을 관통하여 피난 생활을은 미술 활동도 못 할 지경으로 힘들었으며, 그나마 행복한 시절은 서귀포에 피난했을 때였다고 적혀 있다. 피난 시절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중섭은 은박지 그림을 그리는 등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화가였다. 그는 이후 친구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다 55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사람들에게 열띤 반응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건강의 악화로 이중섭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거식증으로 고통 받았고 이는 마음의 병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중섭이 병세의 악화로 서울의 적십자 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가 교과서에 소개된 이야기와 같은 부분이 상당히 많으나 다른 부분도 있다. 교과서 글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이중섭이 민족의 전통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으며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한 점,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라는 점,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을 이 땅의 민중들과 같이 온 몸으로 받으며 살아온 삶이었다는 것은 책과 같다.
그러나 교과서에 소개 되지 않은 부분, 이중섭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화가와는 다르게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의 서명을 반드시 한글로 적었다는 것, 그의 그림이 고려 시대의 청자의 상감 기법과 분청 사기의 기법을 응용하였다는 점, 고구려의 벽화와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그린 그림이 여러 점이라는 것, 추사 김정희의 필체와 같은 힘 있는 붓질의 기법을 그림에 사용했다는 점 등은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만 이중섭이 얼마나 우리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했으며, 그것을 계승하여 현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또한 우리 전통 예술의 위대함도 동시에 말해 줄 수 있다.
또한 이중섭의 그림이 남, 북의 분단에 의해 두 체제의 평단에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중섭은 그 비평을 몹시 힘겨워했다. 그리고 분단 체제의 모순을 알리기 위해 상징적인 그림을 그렸으며, 이런 그림은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제목을 바꿔 전시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투계'라고 이름 붙인 그림을 '봉황'이라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는 그림도 그렸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다.
흔히들 우리 나라엔 민중 미술 외엔 사회의 아픔을 그린 화가가 없다고 하지만 이중섭은 우리 나라와 당시 사회가 가진 아픔을 화폭에 그려냈고 그 그림들은 당국에 의해 철거되기도 했다. <신문과 사람들>이란 그림은 조지 그로스 그림 혹은 오토 딕스의 동판화와 같은 분위기마저 드는 그림이다.
이런 점들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에 대해 공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그가 거식증으로 죽었다고 하는 것도 다른 내용이다. 이중섭은 평소에 미나리를 즐겨 먹어야 할 정도로 간에 이상이 있었고, 거식증도 의사가 거식증이 아니라 간에 이상이 있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진단을 내려 적십자 병원 내과에 입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중섭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정신병자로 보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불편해했고,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자화상을 연필로 그렸을 정도였다. 그러니 교과서에서 마음의 병으로 거식증을 앓았고 그로 인해 죽었다고 하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고뇌의 원근법>이란 책을 읽다 보면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그 책의 내용에는 미술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 미술가들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떤가? 이중섭 미술관이 있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귀포시에 이중섭 거리와 이중섭 갤러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거리를 조성한 시장님은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진가를 아는 분이라 생각된다.
이중섭, 이런 화가 있어 우리 나라 근대 미술이 현실을 비켜서서 서양 미술의 껍데기만 모방하였다는 비판을 간신히 면할 수 있다는 것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교과서만 봐서 알 수 없는 문제들(아무래도 직업병인가 보다. ㅋㅋㅋ...)
1. 이중섭이 그린 그림 중 천도 복숭아의 의미는?
: 무병 장수에 대한 기원 (죽은 아들에게 주기 위해 그린 천도 복숭아도 그런 기원이 담겨 있음)
2. 이중섭은 거식증으로 죽었다.
: 아니다. 이중섭은 극심한 간질환으로 죽었다. 적십자 병원에서 죽은 그의 시신에 대한 묘사를 보며 '영양실조에 걸려 뼈만 앙상하고 눈은 황달에 걸린'이란 부분이 있다.
3. 1955년에 열린 미도파 전시회는 성황리에 마쳤다.
: 사람들이 열광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은박지 그림을 외설적이라 하여 당국에서 철거하고 평단의 일부에선 낡고 구태의연하다고 혹평을 했다.
4. 미도파 전시회에서 그림을 많이 팔아서 돈을 벌었다.
: 아니다. 액자값도 치르지 못해서 여러 점의 그림으로 대신했다.
5.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시를 지은 작가들이 있다.
: 있다. 대표적으로 김춘수 시인이 있고, 그 외에도 오장환 등의 시인이 있다.
6. 이중섭은 정신질환을 앓았다.
: 아니다. 이중섭의 친구들이 청량리에 있는 유명한 뇌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를 진료한 의사가 내과 진료를 권유했다. 그가 자신이 정신질환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과 달리 보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정신 질환을 앓는 이중섭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렇게 정밀하게 그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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