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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저, 실천문학사

나무와 들풀 2016. 6. 18. 11:32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저, 실천문학사

 

 

아~ 4.3에 대한 기억은 황당함 자체였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부산에서 태어나서 4학년 때 제주로 갔다. 그리고 제주 애들하고 잘 놀았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랬는데, 대학에서 선배들이 4.3을 이야기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랬는데 모두들 알고 있었다. 더 황당한 것은 내 사촌들과 우리 엄마, 외삼촌, 외숙모 모두가 서로 쉬쉬하면서 했던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머리가 관덕정에 효수로 있었다는 이야기, 외삼촌이 경찰에게 사살되려고 할 때 옆집 할머니가 경찰 모르게 치마 속에 숨겨서 살았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게 서로 쉬쉬하면서 주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속이 텅 비는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었다.

4.3이 충격적이어서? 절대!

상상해 보라.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20년이 넘게 살았는데 나만 몰랐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나를 모르게 할 수 있었던 그들의 침묵을 상상해 보라. 머리끝이 쭈뼛하지 않겠는가? 나느 그 때 제주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사촌들, 내 친구들, 심지어 내 엄마마저도 말이다. 그들은 나 모르게 4.3을 이야기 하고, 4.3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서야 왜 동네 제사가 줄줄이 있는지, 왜 할머니와 할아버지 기일이 며칠 상관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그 처절한 배신감과 그들과 정서적으로 절대 가까워질 수 없다는 괴리감. 이런 것들이 나를 좀 괴롭혔지만 4.3은 금방 잊혀졌다. 알고 싶었지만 책으로만 읽은 것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 현기영 씨의 '순이 삼촌'을 읽게 됐다. 금서였지 아마? 그러다가 금서가 풀렸을 때 읽은 책이었다. 현재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순이 삼촌보다 '아스팔트'가 더 감동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던 4.3이 잊혀질만 하면 한 번 씩 머리를 호되게 치고 간다. 언젠가 가바보 제주 연수 때였나? 가바보 연수를 제주에서 꼭 해 달라고, 이용중 지부장님이 부탁을 했었다. 그 때 우리 가바보가 조건으로 디밀었던 것이 이용중 지부장님이 직접 4.3항쟁 역사 탐방을 해 주시라는 것이었다. 이용중 지부장님은 흔쾌히 승낙하셨고 나는 그때야말로 4.3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큰넓궤에서 느낀 그 어둠과 공포, 답답함. 그 속에서 한 달을 버텨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흐느낌만 흘러나왔다. 우린 그 동굴에서 차마 목 놓아 울지 못하고 훌쩍임과 했다.

그 4.3을 다시 지상의 숟가락 하나로 만났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이승만과 미국. 어제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과 노제를 보며, 그의 행적 중 4.3 유적에 사과한 그의 그릇과 뜻이 생각나 고마움에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한라산의 철쭉이 그렇게 붉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 책은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