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우유니, 하늘과 맞닿은 곳>
라파즈에서 우유니로 출발하기 위해 4시에 일어나서 아침도 거른 채 버스를 탔다. 40분쯤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6시 30분 우유니 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경비행기로 우유니까지 1시간 정도이지만 새벽잠이 모자라서 1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우유니는 고도가 라파즈보다 더 높다. 4400정도? 들풀이와 안선영은 고산증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괴로워했다.
우유니 공항에 내려 3-40분 정도 기다려 짐을 찾은 후 우리는 우유니 마을로 들어갔다. 우리를 데리러 나온 사람들은 알베르또와 그의 직원이었는데 알베르또의 사무실은 우유니 투어를 마친 사람들이 종이에 써 놓은 그의 친절함과 우유니의 아름다움, 그들이 해 주는 식사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했다. 사실 투어식을 먹어보지 않았을 때는 그게 궁금했다. 어떻게 세계인의 입맛에 맞출까? 어떤 음식이기에 한국인도, 미국인도, 일본인도, 다 맛있다고 음식 솜씨를 칭찬할까 했는데 투어를 다니면서 그들이 해준 식사를 먹어보니 우리도 그 팀 소속의 요리사 세뇨리타의 솜씨에 탄복하였다.
우유니에 도착한 우린 근처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와 쥬스, 커피로 아침을 마친 후 우유니 투어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투어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이동하려고 하는 볼리비아 국경 지방에 내전이 있어 원래 우리의 여정이었던 노천 온천과 베르데 호수는 못 가고 콜로라도 호수 근처에서 다시 올라가서 칠레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 이용할 버스 티켓을 구하려고 알베르또가 두 시간 가량 시간을 지체했다고 한다.
10시 쯤 우리는 세 대의 SUV 차량에 나눠서 탔다. 볼리비아에서 우리가 투어를 하는 길은 모두 자갈과 진흙길이었다. 볼리비아의 길이 모두 그러지는 않겠지만, 세계적인 관광지로 가는 길을 포장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남미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힘든 나라라는 말이 몸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페루보다 밝고 낙천적으로 느껴졌다.
맨 처음 간 곳이 기차 무덤이었다. 이름처럼 옛날 광산이 있을 때 사용했던 증기기차들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까지 기차가 들어왔다고 하나 지금은 안 들어온다고 하는데 철길은 그대로 있다. 그렇게 버려진 기차가 여러 대가 있었고, 그 기차가 주변의 사막과 묘하게 어울리는 풍광을 세계인들은 즐기고 있었다. 남루하고, 황폐하며, 버려지는 것에서 느껴지는 슬픈 미학이라고 해야 하나?
기차 무덤을 본 후 우리는 꼴차니 마을로 갔다. 꼴차니 마을은 예전에는 소금 거래를 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쇠락해서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거나 소금 사막에서 소금을 걷어서 가공하여 살아가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지금은 꼴차니 마을 사람들만이 소금 사막에서 소금을 채취할 수 있다. 하루에 소금을 채취하는 양이 정해져 있으며, 그 양을 채취할 때는 10볼리비아노씩 정부에 내야 한다.
꼴차니에서 소금을 채취하여 가공하는 방법은 몹시 간단하다. 소금 사막에 널려 있는 소금을 긁어서 부대에 담아 옮긴 후, 불로 소금을 볶아 불순물을 없앤 다음 기계에 넣어 갈아서 비닐 봉지에 넣으면 팔 수 있는 상태가 된다. 1봉지에 1볼리비아노로 가격이 쌌다. 꼴차니 마을에는 소금으로 된 집이 있고 그 집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꼴차니 마을에서 다시 차를 타고 질주를 하니 우유니의 대표적인 풍광인 소금 사막이 나타났다. 소금 사막은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전라남도 정도의 넓이라고 했다. 그 넓은 지역이 소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기 때에는 비가 오지 않아 거대한 소금밭이고, 1, 2월처럼 우기에는 소금 밭 위에 비가 내려 물이 차 있다.
소금 사막의 초입에는 소금 결정이 하얗게 바닥에 깔려서 맨발로 걸을 때 발바닥이 아팠다. 그리고 그 부분에 소금 호텔이 있었다. 소금 호텔은 소금으로 지어진 집인데, 호텔이란 이름이 붙여져서 근사한 호텔로 착각할 수 있으나 볼리비아라는 생각을 하면 상상이 될 것이다. 소금벽돌로 단층짜리 건물을 지었고, 방이 몇 칸 나뉘어져 있다. 그 칸칸에 다인용 침실과 식당,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땐 5볼리비아노를 내는데 볼 일을 다 보고 커다란 통에 담긴 물을 직접 퍼다 부어야 한다.
우리는 소금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투어식의 처음이었는데 라마 고기와 싱싱한 생야채, 좁쌀처럼 작은 곡식에 간을 하여 밥처럼 만든 음식을 먹었다. 간만 하지 않았다면 조밥처럼 잘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소금을 넣어서 밥처럼 먹기는 힘들었다. 라마는 굉장히 귀엽고 사람에게 착 달라붙어 어리광도 부리는 동물인데 이 나라에서는 먹기도 한다. 맛은 소고기와 비슷한데 냄새가 나지 않고 단백하였다. 짜지도 않았고 이상한 향신료를 쓰지 않아 맛있게 잘 먹었다.
점심 후 다시 차를 타고 소금 사막을 질주했다. 소금 사막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고도가 4000미터 이상인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평평한 소금판 위에 발목을 넘지 않게 물이 차 있어 지평선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지만 산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바닥에 그림자를 비치고, 구름도 그렇게 그림자를 비치는데 바닥에 고인 물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늘이 그대로 바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하늘이 그대로 바닥에 펼쳐져 있어 내가 하늘 위를 걷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 풍광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하면 상상이 되겠는가! 내 생전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풍광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삶에 대한 감사함이 저절로 일었다.
소금 사막은 원래 바다였던 곳이 융기해서 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이 그렇게 끝없이 펼쳐져 있다. 소금이 깔린 바닥은 6미터부터 100미터의 깊이까지 있다고 했다. 꼴차니 마을 사람들이 이 소금을 얼마나 긁어야 이게 없어질까? 영영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금 사막을 충분히 둘러본 우리는 숙소인 호텔로 6시쯤 돌아왔다.
짐을 풀고, 7시에 머핀에 커피를 마시고 조금 쉰 후에 저녁을 먹었는데, 저녁은 크림 스프에 튀긴 감자를 넣은 것과 소고기 야채 볶음과 빵을 먹었다. 역시 많이 짜지 않고 향신료 냄새가 나지 않아 맛이 있었다.
저녁 후 동네 치킨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셨는데 우장식 샘과 호수 아빠, 김진수 샘이랑 갔다. 이 동네 사람들은 우리처럼 치킨집에서 치맥을 하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온 식구가 커다란 환타 한 병과 치킨과 다른 음식을 시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치킨은 크기가 오리처럼 컸는데 가격은 40볼리비아노로 6000원 정도였고, 맥주는 우와리 한 병이 15볼리비아노였다. 치킨은 배가 불러 먹지 못하고 싸서 가져왔다.
호텔은 지금까지 호텔 중 가장 최악이었다. 한 방에 두 사람씩 자기는 하지만, 화장실이 층별로 하나였고 남녀 구분이 없었으며, 샤워장도 층별로 하나였고 화장실 안에 있었고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날부터 세수를 하지 않고 물 티슈를 사용하여 얼굴과 손발을 닦았다. 방의 이불은 너무 무거워서 누우면 발이 이불의 무게에 옆으로 눕혀져서 삘 것 같았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무게감을 느끼면서 잠을 자다 깨다 하면서 잤다.
허술한 자물쇠와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인 구조와 옆방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다 들리는 방에서 잠이 잘 오겠는가?
< 기차무덤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우리 일행>
< 꼴처나 마을에서 기념품을 파는 가게>
< 우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