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오후
<볼리비아의 숙소 (라구나 콜로라도) 편리함과 결별하기>
라구나 콜로라도는 얕은 호수다. 볼리비아의 사막 한 가운데 여기 저기 있는 호수는 깊이가 깊지 않다. 우리가 상상하는 파란 호수에 노를 저어라 하는 호수가 아니다. 우기에 비가 왔고, 그 비가 고여 있는데 동네 골목길에 고여서 신발을 버리게 하는 크기 정도가 아니라, 깊이는 10-15센티 정도지만 넓이는 노를 저어라 하는 호수처럼 거대한 물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수 콜로라도도 넓이는 굉장히 넓지만 깊이는 얕다. 산과 맞닿아 보이는 저 멀리 끝부분은 하얀 광물질이 쌓여 호수와 경계를 이루고, 그 이후로 연보랏빛을 띠는 넓은 부분과 하늘색을 띄는 부분이 그라데이션처럼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엄청나게 많은 플라멩고들이 한가롭게 먹이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하얀빛과 연보라빗이 그라데이션이 되면서 물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도 플라맹고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자연은 그 크기의 웅장함에서 우리를 압도했다. 콜로라도는 우유니가 보여준 맑음과 신비로움과는 다른 살아있는 것들이 보여주는 평화로움과 아름다움, 살아있음의 환희가 느껴졌다. 그리고 우유니의 소금사막과 콜로라도 중 어떤 것이 더 좋은가에 대한 우매한 질문을 거부했다.
콜로라도에는 세 가지 종류의 플라멩고들이 산다고 했다. 우리나라 서울대공원에도 플라멩고들이 있지만 여기에 사는 야생의 플라멩고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길들여져 먹이만 먹는 것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발랄함. 그리고 여기의 인디오 사람들의 작고 넓은 체형과는 달리 플라멩고들은 서울대공원보다 훨씬 더 날렵하다.
콜로라도 호수에서 먹이를 먹던 플라멩고들이 구경하던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람의 기운을 감지하고 날아갔다. 그들이 떼를 지어 날자, 날개깃의 검은 색과 보랏빛, 꽁지의 검은 색, 가는 다리와 목덜미의 분홍색이 부채를 펼친 것 같다. 우리는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보았고,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일행들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연두, 보라, 주황, 하양의 호수와 그 위의 플라멩고들을 하염없이 보다가 숙소로 갔다.
숙소는 우리의 여행 중 가장 공포감을 주는 곳으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 공포감은 안락함에 길들여진 것이 근원이다. 다 갖추어진 곳에 살던 안락함. 특히 인터넷에 대한 우리의 필요는 생각 이상이었다. 개인 하나하나를 볼 땐 대부분 기계치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호텔에만 들어가면 와이파이 암호를 묻고, 되지 않았을 때 불만이 컸다. 여행이란 어떤 의미에선 친숙하던 곳과 잠시 결별하여 새로운 곳과 사귀는 것일진데 친숙하던 곳을 집착한 채 새로운 곳과 만나려고 하는 우리가 참 어리석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마치 원래 애인을 곁에 두면서 새로운 애인을 만들려고 하는 양다리처럼. 온 마음을 쏟아야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것인데 한 마음은 다른 데 있고, 반편의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만나려는 미숙함이라고 해야하나?
어쨌거나 숙소에서 전기는 7시부터 10시까지만 쓸 수 있으며, 샤워는 못 하고, 다인실 숙소이며, 밤에는 난방이 되지 않아 무척 춥다. 그러니까 핫팩을 준비하여 등에 붙이고 손에도 쥐고, 불이 나가면 사용할 손전등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방에 다닥다닥 붙은 침대에서 예닐곱이 자는 불편함도 감소해야 한다.
여기서 들풀이와 나는 여행 준비를 제댈 못 했기에 그런 것들이 있을 리 없었다. 추우면 한 침대에서 몸이 따뜻한 들풀이와 자면 되고, 손전등 없이 그냥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참고 있다가 날이 밝으면 가고, 씻는 것이야 안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숙소로 갔다.
숙소는 사막 한 가운데 여행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호텔이었다. 여기서 호텔을 오해하면 안 된다. 한 마디로 호텔은 사막 한 가운데 덩그렇게 여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아주 띄엄 띄엄 있는 것이다. ‘아주’의 의미는 차를 타고 5-10분 거리 정도다.
숙소에서 차를 세운 후 우리는 차 위에 실었던 트렁크들을 내리고 숙소를 배정받았다. 6인실 2개와 7인실 하나가 우리의 숙소였다. 여자는 14명이었는데, 호수 엄마가 남자 숙소에 들어가 쓰기로 했다가 아무래도 여자가 있으면 남자들이 불편할 것 같아 6인 우리 숙소의 내 침대에서 자고, 나는 들풀이와 한 침대를 쓰기로 했다.
숙소는 우리가 상상해서 겁먹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특히 볼리비아의 허름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진흙벽돌로 지어진 집에 대한 불결함과 불쾌함,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만약 이 숙소에서 자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영 볼리비아의 집에 대한 나쁜 생각을 갖고 살아갔을 것이다.
페루나 볼리비아는 인디오의 비율이 많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거의 인디오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집도 전통 방식으로 짓는다. 사방에 널린 진흙을 긁어다 짚풀을 섞어 벽돌을 만들어 건기에 말린 후 우기에 집을 짓고, 그 집을 건기에 말린다. 집을 누군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짓는 것 같진 않고, 그 집에 살 혹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짓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허술하고, 쓰러질 것 같기도 하며, 땅의 넓이는 넓은데 집은 아주 작은 오두막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짓는 속도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짓기에 며칠 만에 뚝딱하고 집을 짓는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집 안에는 가구도 거의 없고, 자는 침대나 식탁 정도가 있고 화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는 곳을 제외한 넓은 공간은 닭이나 돼지 개들과 함께 생활하는 곳도 있었다. 이건 나쁘다 비위생적이다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공용 공간을 동물도 함께 사용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참 인간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났다. 간혹 길을 지나다 보면 아이들이 라마나 닭과 같은 짐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보는데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동물들을 아이들이 안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면 굳이 인성 교육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날에도 어떤 남자아이가 강아지를 아기처럼 소중하게 업고 있던 모습을 보았었다.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더러운 개들이 온통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나라에서 강아지를 하얀 포대기에 싸서 소중하게 업고 있던 사내아이를 보면서 강아지도 사람의 아기처럼 새끼일 때는 돌봐줘야 하는 목숨으로 모두가 생각한다는 것이 느껴지며 뭉클했었다.
우리는 볼리비나의 전통적인 집인 흙벽돌로 지어진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집의 모양은 옆으로 길쭉하고 길쭉한 면을 따라 다인실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방 앞에 길게 이어진 통로 같은 곳은 식탁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식탁이 이어진 오른쪽 끝에거 ㄱ 자로 꺾인 곳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그 집과 다른 별채로 작은 집에 영어로 ‘티엔다’라고 씌여졌는데 그곳이 매점이었다.
우리는 숙소에 각자의 트렁크를 갖다 놓고 알베르토의 말로는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볼케이노로 갔다. 남미에서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이상해진다. 차를 타고 30분 정도라고 말하면 50분 정도이고, 걸어서 30분 정도라면 말하면 15분 정도이다. 볼케이노로 가는 길은 10분 아니라 한 20분도 넘게 큰 돌멩이가 즐비하게 깔린 넓은 사막 지역을 부기카도 아닌 랜드로바를 타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갔다.
일본에 갔을 때 검은 달걀을 먹은 화산 지대가 생각난다. 200미터쯤 걸어가서 본 산등성이에는 군데군데 증기가 나고 있었고, 거기에서 구운 달걀이라면서 검은 달걀을 3개에 1000엔에 파는 걸 사 먹었었다. 그냥 증기만 나는 곳이었고, 황 성분의 화산이라 닭똥 냄새가 지독했다.
그런데 여긴 증기만 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운동장 세 배만 한 지역에 부글거리면서 화산이 끓고 있었다. 그런 웅덩이가 몇 십 개는 되어 보였다. 웅덩이마다 색깔이 달랐는데, 노란색, 주황색, 회색 등이었고, 거기엔 계란이나 호떡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냥 화산 활동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구덩이가 수십 개나 되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고, 거기를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보러 가는 것이다.
문명이 가진 닳고 닳음이 보였다.
화산을 보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차와 과자를 먹었다. 사람들이 저녁 먹을 것도 생각 않고 준 과자를 다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칠레에 갈 것이라는, 제대로 씻을 수도 있고, 컵 라면도 살 수 있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비상용으로 가져온 컵 라면과 말린 국을 다 방출했다. 특히 진수 오빠는 오징어 짬뽕면과 신라면, 북어국, 미역국을 다 우리에게 제공했다. 덕분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은 나와 들풀이, 안선영은 신나게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
고향은 음식이다. 그 음식이 있는 곳이 고향이다. 김치찜과 아구찜이 먹었던 맛과 똑 같이 있는 곳이면 바로 고향이고 고국이다.
들풀이는 진수 오빠가 방출하는 컵 라면을 보며, 해외 여행 때 음식물 싸는 법을 배웠다. 컵라면을 그냥 가져가지 말고, 내용물을 비닐에 넣고, 컵만 차곡차곡 겹쳐서 싸야 공간을 많이 차지 않고 가져 갈 수 있다. 그리고 더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말린 국을 꼭 싸가야 한다. 튜브 고추장은 필수이다. 김은 모두 조미김을 싸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미김보다 생김이 좋을 것 같다. 남미(미국의 로스엔젤레스도 음식이 무지 짰다. 독일도 짜다.) 음식이 짜고, 결국 고추장에 비빌 것이므로 생김이 아주 좋겠다. 그리고 애주가라면 반드시 팩소주를 챙겨야 한다. 혼자 먹을 요량이면 팩소주이고, 여럿이서 먹을 요량이면 패트병 4홉 크기의 소주여야 할 것이다. 남은 건 뚜껑으로 닫으면 되고 한 병으로 여럿이 먹을 수 있으니까. 여행 기간이 일주일 이하라면 우리 음식이 그리워질 때 돌아오겠지만 아닐 경우에는 이런 팁들이 유용할 것이다. 글쎄 살면서 긴 해외 여행을 얼마나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날 저녁은 세뇨리타가 아주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었다. 전날 저녁에 먹었던 크림 스프 후에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면에 비해 소스가 너무 작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면에 소스를 듬뿍 뿌려먹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국물 문화이기 때문이라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많은 양의 면에 소스를 조금 뿌려 먹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스에 면을 말아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날도 면은 굉장히 많이 남았고, 소스가 부족했기에 우리는 면에 고추장을 비벼 먹었다. 고추장에 비빈 면은 이에 달라붙어 식감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발 우리는 4400미터의 고도 우유니에서 맥주를 마셨다. 진도아리랑도 부르고, 서울에서 평양까지도 부르면서 민트 위스키와 맥주를 마셨다. 역시 우리 민족은 음주 가무의 민족이 맞다.
9시 30분 불이 나가도 가져온 손전등을 밝히고 맥주를 마신 후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 우리가 갔던 가장 높은 곳은 4800이라고 했다. 들풀이는 이날도 역시 고산증에 시달렸다.
< 라구나 콜로라도>
< 라구나 콜로라도의 플라멩고들>
< 날아가는 플라멩고>
< 볼케이노>
< 숙소 앞에서 - 안선영과 우리 렌드로바 운전기사
우리 운전 기사는 조금 느리지만 아주 꼼꼼하게 짐을 싣고 안전하게 운전을 해서 우리가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