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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미에 간다 7 - 잉카의 슬픔 1(페루)

나무와 들풀 2016. 3. 19. 11:23

2013년 1얼 9일


<잉카의 슬픔, 삭사이와망, 뿌까뿌까라, 땀보마차이>


아침을 먹은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삭사이 와망으로 향했다. 쿠스코는 잉카 제국 당시 퓨마의 모양으로 설계가 되었다는데 삭사이 와망은 그 머리에 해당한다. 버스를 타고 삭사이 와망으로 올라가자 잉카 제국의 마지막 전투지인 삭사이 와망이 있었다. 잉카인들의 건축술이야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거대한 돌들이 틈없이 즐비하게 맞추어 성곽처럼 서 있었다. 이곳에서 잉카 제국은 스페인의 군대와 싸워 완전히 패망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태양의 축제가 6월에 열리는데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서 며칠에 걸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루는 어린이들의 밤, 그 다음날은 중고등학생들의 밤, 그 다음날은 공무원(교사 포함)의 밤, 마지막은 여행자를 포함한 일반인의 밤을 보낸 군중들이 바로 삭사이 와망의 광장으로 모여들어 축제를 한다고 했다. 그때는 5만여명의 군중이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고 하니 대단한 장관이지 싶었다. 삭사이 와망에서 산을 등지고 서면 왼쪽에 거대한 예수상이 보인다. 잉카는 태양신을 섬겼으나 스페인에게 정복당한 후 카톨릭으로 개화되어 지금은 80% 정도가 카톨릭을 믿는다고 하니, 참 안타깝고 슬픈 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삭사이 와망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바로 그 거대한 예수상으로 갔다. 크리스 블랑코라고 불리는데 하얀 예수란 뜻이다.
잉카를 정복한 스페인이 자신들의 종교를 바로 잉카의 수도 쿠스코의 머리에 동상으로 세워놓은 것은 어찌보면 제국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뿌까뿌까라로 갔다. 뿌까뿌까라의 의미는 붉은 늑대로 이곳은 쿠스코를 지키는 성곽이다. 삭사이와망과 같은 돌들이 촘촘하게 성벽을 잇고 있었으며 거대한 산이 보이는데 그곳은 잉카 트레킹 코스라 하여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했다. 그곳은 실제로 잉카인들이 다녔던 길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땀보마차이로 들어갔다. 땀보마차이 가는 길가에는 쿠스코에만 자생한다는 깨우냐라는 나무가 길가에 쭉 있었다. 깨우냐길을 따라 걸어가니 삭사이와망과 축조양식이 같은 석조 건축물이 나오는데 그곳이 땀보 마차이다. 땀보 마차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 했다. 잉카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말라 본 적이 없는 샘물인데 수원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신비한 샘물이라 일컬어진다.
잉카 시대에ㅐ는 왕이 이 곳에서 목욕을 하고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삭사이와망의 퓨마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