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9일
<잉카의 슬픔 피사크, 오얀따이땀보>
피사크 마을을 둘러본 후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오얀다이땀보로 향했다. 땀보는 역이란 의미라 한다. 피사크와 오얀다이땀보 사이의 거리는 1시간 30분 정도 버스로 소요되는데, 도중에 전통 시장에 들러 물건을 보기도 했다. 전통 시장에는 옷, 장신구, 가방 등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토산물품 상점처럼 비슷비슷한 물건들이 어딜 가나 보였다.
오얀따이땀보로 가는 도중 우리는 점심을 먹고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했다. 오얀따이땀보는 스페인과 전쟁을 벌인 중 단 한 번 이긴 곳이라고 했다. 잉카 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을 받아 항전을 하면서 모든 전투를 다 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의 발달된 무기 앞에서 잉카인들이 가진 무기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전쟁을 하는 족족 모두 지고 마지막으로 잉카인들이 모여든 곳이 오얀따이땀보였다. 이곳은 가만히 보면 그 자체가 천연 요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이 모두 산들로 둘러싸 있어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전쟁을 치르는 사람의 숫자에서도 잉카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페루인들에게 오얀따이땀보는 스페인과 치른 전쟁에서 이긴 곳이라는 자존심의 장소라 한다. 여기도 마을이었기에 주거지와 계단식 농경지, 신전이 있다.
오얀따이땀보를 둘러본 우리는 잉카레일을 타러 역으로 갔다. 역은 작았으며, 주변에 작은 가게가 길가에 쭉 늘어서 있었다. 안선영과 나, 들풀이는 저녁을 역전에서 삶은 옥수수로 해결하고 기차를 탔다.
기차는 오얀따이땀보에서 아구아갈리엔테까지 2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나, 중간에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40분을 마냥 기다려서 마츄픽츄로 가는 길목인 아구아갈리엔테에 도착했다. 기찻삯은 무지 비쌌으며, 중간에 음료와 과자를 주었다. 우리의 기차처럼 음식이나 술을 팔지 않아 아주 슬펐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 호수 아버지께서 드시려고 챙겼던 참이슬팩을 속이 좋지 않아 우리에게 양보하시는 바람에 우린 역에서 산 사과에 참이슬을 마시면서 아구아갈리엔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