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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잔치는 끝나고

나무와 들풀 2020. 3. 7. 22:24

장곡타임즈 칼럼


잔치는 끝나고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 박현숙

 

이 글을 쓰는데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곡노루마루 축제 때문에 생긴 장곡동 내 학교들과 마을의 불편한 관계와 축제에 대한 다른 생각을 정리해야 다음 축제에 대한 논의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본다.

네가 뭔데 그런 오지랖을 떠냐고 묻는다면 아주 옹색하지만 나는 시흥의 교사이고, 시민이며, 우리 아이가 시흥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동네 문제에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가기가 어렵다.’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마을과 학교가 장곡노루마루축제를 처음 만들고 2회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무국장을 했다. 사무국이 없는데 국장이었으니 일은 일대로 죽도록 하고, 이래저래 욕은 욕대로 먹었다. 심지어 2회 때는 장곡대로를 막고 축제를 진행했을 때 전화로 도로통제를 항의하는 주민을 달래는 대민업무까지 축제 진행을 하며 했었다. 세상 태어나서 그렇게 심하고도 많은 욕을 동네 사람들에게 먹었으니 반드시 장수(長壽)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던 기억이 난다.

장곡노루축제가 3, 4회를 거치는 동안 나는 동네 교사에서 시청의 공무원이 되어 장곡동의 축제만 아니라 시흥시의 마을축제를 지원하는 업무를 했다. 장곡동에서 시작된 마을축제가 시흥시 전체로 퍼져 학교의 교육과정과 잘 어우러지며 마을교육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을 바라보며 지난 어려움을 재미있는 추억으로 간직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고,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예상하지 못 한 그놈의 돼지 때문에 제 5회 장곡노루마루 축제가 장곡교육공동체의 기반을 흔들고 있음을 축제 전과 이후까지 학교들과 마을에 흐르는 기류로 감지하게 됐다. 그러면서 지난 장곡노루마루축제를 되돌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교육공동체 벗 출판사의 계간지 오늘의 교육에 장곡노루마루축제에 대해 2015년과 2016년에 실었던 글들이 떠올랐다. 그 원고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다시 한 번 장곡노루마루축제에 대한 의미와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 경험에서 느낀 것들을 끌어와서 함께 생각해 보자고 권유하고 싶다. 왜냐하면 역사를 아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과거의 실수가 번복되지 않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20151회 축제에 대해 쓴 원고의 뒤 부분이다.

 

첨단 시대에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인 깃발을 든 장곡청년회원이 장곡중심거리를 도도하게 걷고, 그 뒤를 어르신들, 시흥교육청 장학사, 장곡고 사물놀이반 학생, 인근 학교의 학부모와 초등학생, 교사들이 어우러진 풍물단이 뒤따르고, 그 뒤를 1000여명의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걸어가던 그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 3대가 어우러진 풍물, 노인과 초등학생, 고등학생, 교사, 학부모, 장학사가 어우러진 풍물단을 나는 장곡축제 이외에는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풍물단의 상쇠는 풍물단에서 장구를 치던 장학사 아버지 친구라 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이 상상이 되는가?

축제 4부에서 101명의 어르신들이 주황색 형광티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오르내리는 시간을 다른 공연자의 두세 배를 쓰면서도 무대에 올라가서 섬마을 선생님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던 모습. 그 모습을 눈물을 훔치고 보던 마을 아줌마 아저씨들.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축제 장소로 같은 티셔츠를 입은 어르신과 그 가족들이 삼삼오오 걸어오던 그 모습. 이런 장면을 어느 축제에서 볼 수 있을까? 역시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장곡동청년회장 어머니가 바로 그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한다. 청년회장은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50살이 넘은 청년회장과 그 어머니, 어머니의 공연에 눈물을 흘리는 아들. 이것이 진정한 축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장곡동의 학부모회가 만들어낸 기적도 보았다. 돼지불고기와 야채를 비벼먹을 수 있는 컵밥 한 그릇이 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이었던,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음식 가격이 너무 싸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을 장곡노루마루축제에서 경험하였다. 새마을부녀회가 운영하는 음식전에서 무대에 올라가는 어르신들을 위해 만든 비빔밥. 101명분의 비빔밥을 만들어 공연 잘 하라고 응원하는 음식전. 이런 음식전을 다른 축제에서 볼 수 있을까?

 

교육청에서 그리 강조하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눈 앞에 보이는 듯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 바로 장곡노루마루축제였다. 그 감동을 함께 지켜본 지자체와 지역교육청이 다음 해 시흥혁신교육지구 사업으로 시흥시 전체에 확대하게 됐다.

2016년 시흥시 전체로 마을축제가 확대되고 장곡노루마루 축제는 2회를 맞이했다. 그 해 썼던 원고의 뒤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20161021, 5개 학교가 한 날 한 시에 학사 일정을 맞추어 온 동네가 아침부터 떠들썩하게 거리행진과 풍물과 플래시몹으로 축제를 시작했고, 오전에 각 학교에서 축제를 즐긴 후, 오후에 장곡대로에서 5개 학교와 학부모 연합의 공연과 체험 부스가 펼쳐졌다. 저녁에는 마을 공원에서 영상제와 마을 사람들의 공연이 이루어졌다면 이만한 축제가 전국의 어디에서 펼쳐진단 말인가? 그러니 성공적이라고 하는 말이 거짓이거나 과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말 성공한 것이냐고 다시 한 번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을이 빠져나가고 학교들 중심으로 진행된 축제는 진정한 마을축제라고 할 수 없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 묻는 물음에 조너선 코졸은 교사로 산다는 것에서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밝혔다. 마이클 애플의 책들에서도 교육의 목적에 이런 말들이 언급된다.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이유가 단순히 아이들의 성적 향상에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래 맞아하기엔 뭔가 찜찜한 것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삶을 고민하고 그들이 이 사회를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존재로 자라게 하려면 학교 교육의 중심에 마을이 있어야 한다. 마을이 빠지면 아이들이 삶이 빠지고, 삶이 빠졌는데 사회는 어디 있으며 민주 사회는 어디 있겠는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축제의 내용은 5개 학교 교사들의 교육이 만들어낸 것이다. 5개 학교의 연합이 가능했던 것은 각 학교의 축제 담당 교사들이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에서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주민자치센타의 적극적인 지원과 마을 단체들의 보이는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축제가 끝나고 마을과 학생기획단과 학부모연합에게 끝끝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축제에 교사들이 안 보였다는 것이다. 축제 담당 교사는 있었지만, 축제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교사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마을교육공동체를 말하며 마을의 참여를 원하는 학교에서 마을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마을을 알고 마을을 이해하는 교사들이 없다면 그것은 허상으로 만들어낸 거짓 문서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제2회 장곡노루마루축제를 하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무슨 데자부인가 싶다. 2회 축제를 마치고 했던 생각과 올해의 일들이 보면서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구오

그 모든 걸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난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 시가 두고두고 싫었던 것은 마지막 행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였다. 일 하는 사람에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라는 질문은 힘을 빼고 주저앉히는데 더없이 좋은 주술과도 같은 주문이다. 특히 교육에서 대체 무슨 상관인데?’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허상처럼 보이는 미래와 희망을 어떤 재주로 설명하고 같이 가자고 설득할 수 있을까? 교육은 정말 상관이 있거든이어야 안 보이는 미래를, 어렴풋한 희망을 말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교사여야 하지 않을까?

역시나 나는 이래저래 욕 먹을 이야기를 또 하고 있다. 에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