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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교육하다. 푸코와 권력에 대한 질문과 답변 본문
질문 1: 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은 ‘전통적인 권력’과 어떻게 다른가?
⇒ 전통적인 권력은 왕권에 당연히 부여되었던 것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권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권력은 상층부에서 민중으로 가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물처럼 권력이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라면 지금은 권력이 민중에게 있으며, 민중은 집권하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느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여전히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그 작동의 방식이 권력에 대항하는 것(권력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신체를 가해하는 것에서 규율을 통해 복종시키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미세하고, 지속적이며, 기계적이고, 형식을 갖춘 기제인 규율을 통해 더욱 더 정교하게 권력이 인간을 복종시키고 있으며, 그 과정이 가진 특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권력을 자각하기 어렵게 습관화 된다. 자동인형이란 표현이 여기에 나오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권력은 빌헬름 텔이나 홍길동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대중의 영웅이 될 수 있었으며 왕과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규율 권력은 규율이 그럴 가능성을 싹조차 트지 않도록 복종시키고, 습관으로 만들어 그런 일을 한 사람을 영웅이 아닌 범법자로 낙인 찍는다.
질문 2: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운영 방식이나 규칙 중 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특히 신체의 효율적 규제)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학교 규칙 : 예를 들면, 8시 45분까지 입실한다. 8시 50분에 조회를 시작한다. 9시 15분에 1교시가 시작된다. 8시 50분까지 입실하지 않으면 지각이다. 지각, 결석, 조퇴의 경우 미리 허락을 받고,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시간표가 정해져 있고, 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어길 경우 경중에 따른 징계가 있다. 수업 시간에 똑바로 앉아야 하며, 경청해야 한다. 교무실에 들어올 땐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들어오면서 인사를 해야 한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교탁에 자리표를 적어두고 들어오는 교사에게 자리를 바꿨거나, 수업 시간에 떠든 아이들을 표시한 후 담임에게 달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규율 권력이 다른 교사의 권위까지 질서라는 명목으로 침범한 경우이다. 이것을 불편하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면 공동체를 해한다고 공격당할 수 있다. 교사들이 교실 안에서 다양한 수신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손뼉 한 번은 칠판을 본다, 두 번은 경청, 세 번은 모둠을 푼다 등의 기호들. 교사의 책상에 차임벨 놓고 그것으로 학습의 시작과 끝, 동작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질문 3: ‘규율 권력’이 발휘되는 방식과 교사의 ‘권위’가 발휘되는 방식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현재 학교에서 일어나는 생활 지도는 ‘교육’의 일부분인가, ‘통제’의 일부분인가?
⇒ 규율 권력은 학교 시스템에서 주로 발휘된다. 학교 일과의 시작과 끝이 정해진 것,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야 하며, 일과의 시정표에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 규율 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질서를 어긴 것으로 간주되어 거기에 따르는 처벌이 있다. 그러므로 규율 권력은 반항할 수 없으며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따르므로 무조건적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규율 권력이 많은 학교일수록 다양성이 없으며 자율적인 인간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매사의 행동을 사사건건 교사에게 물어보고 행동하게 된다. ‘화장실 가도 돼요?’, ‘신발은 어떻게 해요?’, ‘옆 반에 가서 교과서 빌려와도 돼요?’ 등의 다섯 살 정도의 어린이가 물을 법한 질문을 고등학생도 하게 만든다. 철저하게 자율 의지를 죽이고 규율을 확인하고 행동하는 인간을 만든다. 권력은 주체가 부리는 것인데 반해 권위는 객체가 부여하는 것이기에 권위가 발휘되는 방식은 상대방이 처벌이나 결과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지 않는다. 권위는 자발적 복종을 낳을 경우가 많으며 자발적 복종은 자기 의지이기 때문에 자율성을 죽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학교에서 일어나는 생활지도는 대부분 통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질문 4: 시험에 대한 푸코의 설명, 즉 (감시하는) 권력과 (규격화하는) 지식의 결합으로서, 그리고 규율 권력을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기계장치의 꽃으로서, 시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른 대안적 평가 방법은 있을 수 없는가? 교사로서 특히 교실에서의 ‘교육적’ 평가 방법에 대해 어떤 숙고를 하게 하는가?
⇒ 한 사회에서 지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권력자들에게 유리한 것들이며 그것이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권력을 대대손손 공고히 하는 장치이다. 여기에 누가 그게 잘못 되었다고 항의할 수 있는가? 영어가 왜 우리나라에서 중요 과목이며 대입과 취업 시험에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제주에서 서울에 사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말(표준어)로 시험 문제가 출제되는 상황을 어느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시험 문제와 교과서를 구성하는 지식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수학에서 벡터와 미적분을 알아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이 수능에서 출제되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출세를 하고 사회의 상층부를 형성하며 그들이 다시 시험을 출제하게 된다. 권력을 쥔 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는 아주 정당해 보이는 속임수가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안적 방법을 간디는 마을과 자급자족에서 구했다. 카디를 직접 짜 입고, 카디를 짜는 물레를 통해 수학과 역사를 공부하며, 가장 필요한 물품은 마을에서 직접 생산하는 시스템. 스와라지. 그것을 통해 지식이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을 멈추고 세계 평화까지 이야기한다. 듀이도 지식을 삶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지식의 접근을 존재론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바넷의 주장에 귀가 솔깃하고 있다. 앎의 과정이 존재의 성장을 가져오고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하는 말에 아주 동감이 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사회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이 시험이 될 수 있게 교실에서 평가 문항 개발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요번에 만든 ‘매체와 윤리’라는 수업 기획과 평가는 그 부분을 좀 반영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논술형 평가이지만 평가 척도안에 의해 결국 일관성 있게, 체계적으로 쓰면서 글발 좋은 애가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 5: 교사로서 우리 자신은 또한 학교 내에서 어떤 규율 권력에 예속화되어 있는가?
교육청에서 행하는 다양한 교사 연수 시스템,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각종 법률-품위 유지 의무, 복종의 의무, 비정치적이어야 하는 것 등. 교장-교감-교사로 이루어진 위계질서, 일렬로 늘어선 교실과 복도, 교실 창의 높이를 통해 감시가 가능한 교실 안.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 행위와 학교 밖을 나갈 때 결재를 받아야만 가능한 시스템, 국가교육과정을 가르쳐야 하는 것, 교과서 외의 교재를 사용할 때는 학운위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것, 복무 점검, 인사기록 카드 등. 아주 촘촘하게 짜놓은 일과표와 법률, 규정, 교육청의 계획서, 학교의 규정가 인사 규정 등의 규율 권력에 예속화되어 있으며 이 규율 권력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들이 승진을 하고, 승진을 한 사람들이 관리가 된다. 이 규율 권력을 거부하면 부적응자 또는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힌다. 물론 거부한 것이 아닌 부적응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규율 권력에 일렬로 늘어서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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