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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교육자치회 책자 추천사 원고

나무와 들풀 2022. 1. 27. 14:54

노랑 제비꽃의 기록

 

마을교육공동체를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은 학교가 있는 곳이면 당연히 갖춰야 할 필요 조건으로 거론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출처 불명의 속담은 학교가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요청할 때면 의레 근거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보면 아이를 잘 키우려면 마을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랑 제비꽃 하나를 피우는데 온 숲, 나아가 온 우주가 필요하다는 시(반칠환 노랑 제비꽃’)가 말하는 바이다. 제비꽃 하나만이겠는가? 세상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살아가는 데는 온 우주가 협력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은 학교 측이 생각하는 학교 교육을 위해 마을이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학교가 마을 생태계 안에서 협력적으로 교육 활동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껏 학교가 마을과 거리를 두고 저멀리있었던 일을 반성하고 스스로를 성찰을 성찰하여 더욱 마을에 다가가고 마을의 구성원으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을과 학교가 협력하여 마을에서 교육 주권을 찾고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세하자는 것이 학교자치이고 교육자치라면 이 책의 저자 주영경 대표는 교육자치의 실현에 몹시 필요한 마을 사람이다. 지금 장곡교육자치회가 이만큼 체계를 갖추게 된 것, 시흥의 지자체와 교육청, 학교, 마을 사람들의 협력이 비교적 긴밀하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 바탕에는 이 분의 역할이 상당했다.

교육자치 운동 이전부터 주영경 대표가 발행하는 장곡타임즈는 놀라운 마을 매체였다. 읍면동에서 신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발행하는 인쇄물들이 신문의 역할을 하는 것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의 변방인 시흥에서, 그것도 장곡동이라는 곳에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신문이 있다는 것은 국어교사로 참 신선하면서 고마운 일이었다. 동네 신문이지만 이런 수준 있는 매체라면 우리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생산한 작품들을 실어도 손색없겠다 싶었다. 특히 중앙지나 지방지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우리 아이들 작품들이 모두 소중하게 실려 각자의 집으로 배달되고, 어른들은 그것을 읽고 동네에서 그것을 소재로 교육을 말한다면 온마을이 학교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속담이 현실로 실현되는 것이다. 학부모나 지역 주민이 방관자나 민원인이 아니라 교육을 함께 말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나는 주영경 대표가 발행하는 장곡타임즈의 기사 제공자이자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장곡중학교가 혁신학교로 자리매김하고 동네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도 장곡타임즈의 힘이 컸다. 장곡중학교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혁신학교였지만 동네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버스를 대절해서 학교 혁신의 모습을 보러왔던 장곡중학교의 혁신을 가장 반겨야 할 동네가 모르고, 오히려 학교의 혁신 교육 성과를 음해하는 소문이 돌 때도 진실을 동네에 알려 난관을 함께 넘어간 것도 장곡타임즈였다.

마을학교 너도도 같이 애써서 만든 장소다. 학교 교사들에게 마을학교를 만들려고 하니 백 만원씩 내자고 했을 때 장곡동에 살지도 않는 교사들이 백 만원에서 수 십만원까지 냈던 바탕에는 장곡타임즈 주영경 대표와 교육에서 지속적으로 가져온 협력적인 관계가 있었다.

장곡중학교가 혁신학교로 뿌리를 내리면서 교육과정이 학교 담장을 넘어 마을로 향할 때, 학교가 절실히 마을과 협력과 소통을 원할 때, 주영경 대표는 학교와 함께 하는 마을 축제를 제안했다. 그 제안에 힘입어 동네에 있는 학교를 설득해서 장곡노루마루 축제를 함께 치를 수 있었다. 장곡중의 교사였으면 할 수 없었을 일을 마을 사람들이 든든히 버티고 추진하겠다 하니 주변 학교들을 설득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다음 해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 서로 큰 소리를 치며 갈등도 빚었고, 두어 달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체 외면하며 지낸 적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온실 안 화초로 살았던 교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을 축제 이후 시흥시 임기제 공무원이 되어 행복교육지원센터에서 근무하며 시흥혁신교육지구 사업을 진행할 때 시민의 교육 주권과 교육 자치 실행을 고민하는 지자체에 마을교육자치회라는 실행 기구를 제안한 사람도 주영경 대표였다. 이 제안은 시흥시가 시흥혁신교육지구를 2011년부터 운영하며 교육청과 지자체, 학교, 마을의 협력을 넘어 교육자치를 구축하는 것이 민주의 중요한 축임을 깨닫고 그 실행 모델을 고민할 때 적절하게 나온 것이어서 결과가 잘 도출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실로 이 논의는 3년 정도 지속되었고, 지자체와 교육청, 학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논의를 하며 버린 시간도 많고, 논쟁이 감정으로 치닫는 경우까지 있었지만 결국에는 함께 나가야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닌 목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너와 내가 말하는 의미가 다르고, 학자마다 다르게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우리들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몸으로 느낀 생활어로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말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학자의 연구물은 현실을 건너서 본 개념어이기에 현장을 담기에 부족했다. 가뜩이나 오염된 언어가 세상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마을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실천 속에서 깨달은 언어, 외국의 이론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것이 아닌 우리가 한 활동에서 의미를 찾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해야할 절실한 시점에 또 주영경 대표가 이 일을 했다. 몹시 고맙고, 미안하다.

그리고 이 기록이 가능할 수 있게 제안하고 책으로 엮을 수 있게 지원한 시흥시는 참 좋은 우리의 교육 동반자이다.

 

시흥시민, 장곡마을학교 너도운영위원, 경기도교육청 교사 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