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나무

[학교일기 5] “나 20키로 못 빼면, 머리 빡빡 밀거야” 본문

원고

[학교일기 5] “나 20키로 못 빼면, 머리 빡빡 밀거야”

나무와 들풀 2024. 1. 3. 15:22

"싸우고 울고, 태풍은 지나갔다"

“어제 용석이 엄마 전화를 받았는데, 그게 어떻게 학폭일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시더라구요.”
1반 김 선생이 출근하며 어제 뚜껑이 열린 ‘바리깡 사건’의 진행을 말한다.

“저도 어제 인범이 어머니께서 전화하셔서 소리를 지르면서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해서 깎아준 게 어떻게 학폭이냐 하시면서 엉엉 우시더라구요.”
5반 최 선생도 그 말을 듣고 전날 저녁에 받은 전화의 내용을 말한다.

아무 사고 없이 수련회도 잘 다녀왔는데 주말에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으니, 3반 준혁이 머리를 5반 인범이, 1반 용석이 및 다른 학교 애들도 끼고 몇몇 애들이 바리깡으로 밀고 그걸 보면서 낄낄대고 웃었다고 한다.

“뭐? 애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었다고? 엄청난 학폭인데? 왜 그게 학폭이 아니라고 하시는 거지?”
“아니 그게, 준혁이가 자기가 두 달 동안 다이어트 해서 살을 20키로 뺄 건데, 못 빼면 머리를 민다고 했대요. 결국 못 빼서 지가 밀어야 하는데, 자기가 못 민다고 인범이랑 용석이 등 다른 애들한테 밀어달라고 해서 밀었대요. 학부모님들은 그 부분에서 학폭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이야? 자기가 머리를 민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 민 거면 학폭 맞지! 나 좀 때려 줘 해서 떼거리로 달려들어 때리면 그거 학폭 아니야? 때려달라고 해서 때렸다. 이게 말이 돼? 머리 민 건 때린 것보다 더 한데?”

“부모님들 입장도 머리 밀어달라고 해서 밀어줬는데, 그걸 준혁이가 학폭으로 거니까 이해가 안 되시나 봐요.”
“아니, 준혁이도 그래. 두 달 동안 20키로 빼는 게 말이 돼? 애들도 그래. 못 빼면 못 빼는 거지, 그걸 어겼다고 머릴 민 건 너무 한 거네. 학폭은 분명히 맞는데?”
“글쎄 말예요. 밀면서 그걸 또 라방(라이브 방송)을 했대요. 몇몇은 밀고, 몇몇은 낄낄대고 보고, 라방 찍고, 라방 들어와 본 애들도 몇 명 되고. 애 머리 보니 미장원에서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싹 밀었고, 울긋불긋하고 자잘한 상처도 좀 있더라구요.”
“라방까지? 완전 학폭 구성 요건 완벽하게 갖췄네. 빼박이구만. 근데 부모님들은 왜 아니라고 하시지?”

이렇게 ‘바리깡 사건’은 지난 주 1학년 교무실을 강타했다. 수련회 끝나고 첫 등교한 월요일 준혁이 엄마가 만류하는 준혁이를 억지로 끌고 와서 담임 교사에게 학폭으로 처리할 것을 요청하면서 사건이 드러나고 교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월, 화, 수 ‘바리깡 사건’은 교무실을 계속 떠돌았고, 목요일이 되던 아침. 학년 부장 선생님,

“어제 ‘바리깡 사건’은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완전 훈훈하게 끝났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애들이 사과하고, 준혁이는 왜 자신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사과 받고, 부모님들은 준혁이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하고, 그리고 서로 끌어안고 울면서 끝났어. 학폭으로 올리지 않고 그렇게 맺는 걸로.”

“인범이 엄마는 그게 어떻게 학폭이 되냐고 화를 내고 우셨잖아요. 준혁이 엄마는 엄청 화 나서 학폭 열겠다고 하셨고. 그런데 그게 순식간에 화해가 되고, 훈훈하게 끝날 수 있어요?”
“아, 그게 얘네들이 평소에 서로 친해서 같이 다녀요. 준혁이는 인범이네 집에 가서 잠도 자고, 엄마가 음식도 만들어 주시고. 언젠가 준혁이가 놀면서 인범이네 커튼도 다 망가뜨렸는데 엄마가 ‘준혁이니까’ 하고 그냥 넘어가고 했대요. 그날도 인범이가 준혁이 머리 깎아야 한다면서 바리깡을 찾길래 엄마가 찾아줬대요. 그런데 갑자기 그게 학폭이라고 하니까 엄마가 너무 놀라고, 그게 인범이라고 하니까 인범이한테 섭섭하고 배신감 느껴서 그렇게 화내고 울음까지 나오신 것 같아요.”

“근데 왜 준혁이는 학폭 해야 된다고 한거야?”
“준혁이는 아니라고 하면서 엄마 엄청 말렸대요. 근데 준혁이 엄마가 준혁이 머리 꼴을 보고 열 받고 속상해서 학교로 준혁이를 끌고 오신 거예요.”
“엄마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애들이 학폭 당하면서도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서로 자초지종을 듣고 오해가 풀리니까 서로가 이해되고 미안하니까 부모님들끼리 그렇게 끌어안고 우셨겠죠.”
“그럼, 애들은?”
“흐이그~ 걔들은 그 자리 끝나자마자 만나서 고기 먹었대요. 고기 먹고 당구칠 거라면서...”

 

                                                   (교사들이 모두 수업에 들어가고, 고요만 남은 교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