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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일기 57) 맙소사!

나무와 들풀 2025. 4. 2. 16:39

올해 새로 오신 교장님이 학부모총회에서 한 인사말에 교사와 학부모들은 멘붕에 빠졌다.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처럼 말은 명확한 단어를 피하면서, 의미는 정확하게 청자들의 머릿속에 착착 감겨 들었다. 이런 화법은 주로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구사하는데, 정치적인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교장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걸 보면 마음과 몸이 따로국밥처럼 되나 보다.

딱 꼬집어 핵심 용어를 말하지 않았으므로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요점은 ‘혁신학교는 이제 끝났으니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로 유명했고, 학생자치 잘 되고 있고, 다양한 교육과정이 펼쳐지고 있지만 너무 방만하다. 마을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은 과하다. 이제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펼쳐야 한다. 우리 지역에 과학고가 생겼으니 이제부터 여기에 집중해서 맞춤형으로 과학 교육을 잘 해서 우리 아이들을 여기에 많이 보내는 것이 내 꿈이다.’였다.

가슴이 갈갈이 찢어졌다. 우리 학교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지금까지 발버둥치며 온몸과 마음을 갈아 넣고 있는데, 학부모 총회에서 새로 온 교장님이 누구의 허락을 받아 이런 발언을 한단 말인가. 자신이 한 말을 이 학교에 남아서 끝끝내 지킬 마음으로 한 말이라면 ‘오케이, 우리 토론을 하고 진짜 시대에 맞는 학교를 고민한 후 철학을 공유하고 함께 다시 새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라고 할 거다. 그런데, ‘내 꿈’이라니! 학교가 자기 소유물인가! 2, 3년이면 떠날 주제에 개인의 꿈을 왜 학교 공동체에 강요하는가.

머리가 딱딱 아팠다.
총회가 끝나고, 전년도 학부모 회장님이

“우리 교장샘은 우리 학교의 역사도 모르시나 봐요. 학부모들이 수군수군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만든 학교인데, 우리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올해부터 학교 일에서 손 빼려 했는데, 너무 놀라서 감사 신청했어요.” 라고 한다.

그래요.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어렵죠. 시련의 길, 손잡고 함께 걸어요.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