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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서평)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김재인 지음 본문
“우리가 자신에 대해 관대하고 무비판적일 때, 희망과 사실을 혼동할 때, 우리는 사이비 과학과 미신에 빠져든다.” -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
나는 우리나라 외 다른 사회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지금 우리 사회를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지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왜 이럴까? 라고 묻는다면 칼 세이건 선생님이 적절한 답변을 한 것 같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 나는 들뢰즈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러면 안 된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나’라도 사회를 바꾸는 일에 조금이라도 나서 보자는 말이다. 내가 하고, 앤드, 너도 하고, 앤드, 오늘도 하고, 앤드 내일도 하고....그러다 보면 바뀌지 않을까? 이 사회는 이렇거든! 즉, ‘이즈’가 아니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너도 하고, 나도 하고, 즉, ‘앤드’라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느냐 말이다. 이것은 ‘무작정 해보라’ 하고 들뢰즈가 권장하는 사항이다. 왜냐하면 들뢰즈는 생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가 왜 이 모양이냐?’라는 질문에 답한다면 우연히, 하필이면, 그렇고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그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왜 2학년 8반 수업이 엉망진창이냐 하고 물을 때. 작년 1학년 10반 수업이 엉망이었어. 그 반에 뭉쳐서 떠들며 수업을 망치는 학생들이 있어서, 다음 해엔 그렇지 않도록 서로 떼어서 분반했잖아. 그런데 우연인지 모르지만 작년에 눈에 띄지 않았던 지석이가 8반의 의도를 가지고 떼어놓은 도식이와 지민이를 만나는 순간 숨어 있던 에너지가 분출하지 않겠어?
오 마이 갓~ 이 서너 명이 합력(협력이 아니다.) 하며 시너지를 얻으면서 수업 중 우렁찬 합창까지 하게 되는데, 이 녀석들이 지들끼리 합이 얼결에 잘 맞는 걸 알자 신이 나서 춤까지 추었지. 그런데 하필이면! 이들이 모두 우연히 베어스 찐팬들이라 응원가와 율동이 짝짝 맞는 절묘함을 누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거다.
결국 세계사의 흐름이든, 현재 사회의 모습이든 어떤 필연적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라 우연과 우발이 종합되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하므로 우리가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다면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되겠다. 우리가 각자 우연히 만나 생각하는 바를 우발적으로 합쳐지게 하는 공간에서 합력으로 시너지를 만들며 함께 나아가면 그것이 역사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겠나.
인간의 존재 조건은 사회이므로 결국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는데, 이 순간이 과거를 만들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며 영원한 거다.
세계가 변하려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합력’, 즉 힘들이 종합되어 특정한 방향으로 향하는 시공간상의 어떤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합력은 이 순간 우리가 어떤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어떤 일들이 우연히 발생할 수 있다. 합력 없이 내가, 우리가 원한다고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체란 몸을 구성하는, 몸과 연관된 물질 변화의 부산물로서 생기는 느낌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집단이 중요한 것은 주체를 형성하는 가장 가까운 조건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물질들이기 때문이다. 즉, 8반이 아니었다면 지석이가 베어스 응원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율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작년에는 안 그랬다는 게 증거 아닌가!
자본주의란 제도 자체가 흠결이 있기에 우리는 자기가 원치 않아도 악의 협조자 또는 동업자가 되는 상황에 모두 연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흠결을 ‘앤드’, ‘앤드’, ‘앤드’....한다면 그것이 바로 혁명적 실천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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