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1일 오후
칠레 그레이 빙하
국내에서 혹은 동남아에서 단체로 깃발을 따라 다니면서 관광버스를 타고, 10분 보고 빨리 빨리 모여서 빨리 빨리 이동하고 빨리 빨리 먹고, 빨리 빨리 보고를 지금까지 여행이라고 했다면 남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 곳을 하루 종일 본다. 기다리고, 천천히 보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간다. 빨리 먹고 싶어도 못 한다. 뷔페가 아닌 한 미리 주문을 해도 음식은 1시간 기다려야 나오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은 후 그레이 빙하를 보러 갔다. 그레이 빙하는 높은 산 속에 눈이 쌓여 녹지 않은 빙하가 조금씩 떨어져 나오면서 강으로 흘러드는 것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6명 이상 건너면 위험하다는 출렁다리를 건너 호수가 있는 백사장을 걸었다. 호수인데도 물결이 일고 파도가 쳤다. 빙하는 멀리서 보기에 하늘색 플라스틱 조각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주 비현실적이었다. 눈이 내려 쌓이고 그게 얼음 덩어리로 굳어졌다면 하얗게 보여야 할 것인데 하늘색이라니! 좀더 가까이서 보면 하얗게 보일 것 같아 일행을 두고 걸어갔다. 그곳은 조금만 섬이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 한 바퀴 도는 것도 관광 코스였다. 시간 상 섬을 한 바퀴 돌지는 못 하고 빙하 조각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까지는 가기로 했다.
< 빙하 가는 길>
1키로 정도 산길을 오르자 전망대가 나타났고, 빙하가 가까이에서 보였다. 역시나 하늘색이었으나 멀리서 볼 때보다 현실감이 있었다. 그리고 전망대 의자에는 누군가 들어가지 마시오라 경고 문구를 무시하고 들어가서 건져온 빙하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참 신기하게도 그런 조각은 흔히 보이는 얼음 덩어리였다. 하늘색으로 보이던 것이 그런 덩어리로 존재할 때 투명한 얼음색이다. 그 빙하 조각을 건져 놓은 사람은 분명히 한국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 그레이 빙하>
< 건져 놓은 빙하 조각>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해외엔 참 한국 여행객이 많다. 우리가 남미 여행을 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한국 여행객을 만났다. 만난 사람 중엔 일정이 비슷해서 처음 만났던 사람이 가는 곳마다 있기도 한다. 그럴 때 고향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있으면서도 김이 새기도 한다. 왜냐하면 해외라는 느낌이 싹 씻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중 김미숙 선생님은 또레스 델 빠이네의 폭포에서 친구 언니를 만났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그 분들도 교사인데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카페 회원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왔던 길을 그대로 왔는데, 우리가 깔라마에서 산티아고로, 산티아고에서 몬뜨를 경유해서 아레나스 공항을 세 번의 비행기를 타고 6시간만에 온 거리를 3일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깔라마에서 산티아고까지 하루, 산티아고에서 아레나스까지 이틀.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 일행은 길게 버스를 탄다는 투덜거림을 멈추었다.
그레이 빙하를 본 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자유식이기에 근처 식당을 찾아야 했고, 다음날 자유식이 있기에 먹을 거리도 마련해야 했다. 칠레는 물가가 비싸지만 의외로 농산물은 쌌다. 우리는 호텔 근처의 농산물 가게에 들러 복숭아와 오이, 고추를 샀다.
나탈레스에 도착해서 호텔로 들어갈 땐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동네 가게들이 문을 다 닫았는데, 이튿날 보니 그곳은 비교적 번화한 거리였고, 조금 걸어서 코너를 돌면 시외버스정류장도 있었다. 우리가 이 동네를 샅샅이 뒤진 이유는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먹을 맥주를 사러나왔을 때 분명히 빠이넬 국립 공원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갈 때 보았던 가게가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지이고 외국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라면 마쳇과 같은 곳이 늦게까지 열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의외로 9시 이후에는 마쳇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동네를 샅샅이 다 뒤지다가 결국은 저녁을 먹은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곳은 전날 우리 일행 모두가 저녁을 먹은 ‘아우스랄 레스토랑’이었다. 이날은 콩소메 스프를 시켰는데 간이 잘 맞은 계란탕이 나왔다. 그리고 어제 먹었던 생선 튀김과 잘 구은 스테이크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1시간 헤매다가 결국은 다시 그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는데, 비가 폭우처럼 오기 시작했다. 비를 보고 있노라니 우리나라가 그립기도 하고, 파전에 막걸리도 생각이 나서 맥주를 왕창 마셔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