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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업일지

주체적 감상. 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내용 탐구

나무와 들풀 2024. 8. 23. 15:14

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사장이 여자아이에게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태국 바이어들을 접대한 회식 때였다.

바이어들은 미스터 쏨싹과 미스터 싹다우 두 사람이었다. 저녁에 뭘 먹고 싶으냐고 묻자 두 태국인은 수줍어하며 삼-쌀 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재미있어 한 이사가 저녁에 태국인들과 삼겹살을 먹을 거라고 사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사장도 그 사실을 재미있어하며 다른 약속이 없는 직원들을 불렀다 신임 사장은 틈만 나면 회식 자리를 만들며 직원들과 스킨십을 하려 했다. 그렇게 태국 바이어의 환송회가 커져서 회사 전체 회식이 되었다. 그래봤자 서울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은 십여 명 정도였다.

 

질문 : 태국인의 대답을 재미있어 한 이유는?

 

 

이사가 데려간 고깃집에서 미스터 쏨싹과 미스터 싹다우는 다소 당황해했다. 삼켭살집은 보다 허름하고 시끌벅적한 곳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은영은 태국인들이 어떻게 한국의 삼겹살집을 잘 아는지 궁금해져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드라마 <호텔킹>, <아이리스 2>, <미스 리플리>, <에덴의 동쪽>, <헬로! 애기씨>, <왕꽃 선녀님>, <낭랑 18>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한국인들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뭔 우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드라마를 태국 사람이 보고 있어?

이 친구들 잘 모셔야 돼. 우리가 한류를 꺼뜨리면 안 돼.

사장이 말했다.

사장은 미스터 쏨싹과 싹다우에게 코리안 밤샷을 가르쳤다. 소폭을 몇 잔 마시자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은영은 태국인들의 본명이 쏨싹과 싹다우 뒤로 깍따따따 으랏차차 빡까까야 깐따삐야 하는 식으로 길게 이어지며, 그들이 탤런트 이다해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가 미스 혜미를 좋아해요! 딸꾹! 이다해 닮았다면서!

싹다위가 쏨싹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쏨싹은 얼굴이 빨개져서 부끄러워했으나 잠시 뒤에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미스 혜미는 왜 회식에 안 왔나요?

혜미씨는 파트타이머예요.

은영이 대답했다

파트타이머는 컴퍼니 디너에는 못 와나요?

그게 아니라…… 혜미씨는 집이 멀어요. 그래서 저녁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고 곧장 집에 가요.

은영의 말에 싹다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쏨싹이 말을 붙이고 싶어 했는데 미스 혜미가 너무 차갑게 보여서 그러지 못했어요.

싹다우가 일러바쳤다.

우리도 혜미 씨한테는 말 잘 못 붙여요.

엔지니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질문 : ‘미스 혜미는 왜 회식에 안 왔나요?/혜미씨는 파트타이머예요.’에 담긴 의미를 말해보자

 

 

 

이사가 차도에 뛰어들다시피 해서 태국인들에게 모범택시를 잡아 주었다. 아이 러브 유, 코리아! 아이 러브 유 오올! 쏨싹과 싹다우가 택시를 타기 전에 외쳤다. 노래주점에서 잔뜩 흥이 오른 한국인 직원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삼차 장소인 이자카야로 갔다.

태국 애들 보기에도 그 아가씨가 쌀쌀해 보였나 보네.

사장은 오뎅탕과 마른오징어를 주문했다.

성혜미 씨요?

은영이 물었다

그 아가씨는 하는 일이 정확히 뭐야? 박 차장이 뽑은 거야?

박 차장은 지금은 그만둔 은영의 상사였다.

박 차장님이 출산휴가 들어갈 때 빈자리를 메우려고 뽑은 아가씨예요. 우리 회사 오기 전에는 무슨 중학교에서 서무를 했다던데요.

어째 교직원 같은 분위기더라 맨날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 박 차장은 지금 그만둔 거지? 육아휴직 상태가 아닌 거지?

사장이 서울에 올라온 지는 이제 겨우 한 달이었다. 그전까지는 포항과 울산을 오가며 영업을 담당했다. 외국인 사장이 독일 본사로 돌아가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사장이 된 케이스였다. 막 자기 업무 파악이 끝났고 다른 사람들의 업무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었다. 이 순간까지 사무보조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두셨어요. 사장님이 서울 올라오기 며칠 전에.

박 차장이 육아휴직을 마치자마자 사표를 쓴 데 대해서는 은영도 괘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남자들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박 차장이 하던 일을 지금 그 아가씨가 하는 거야? 그 아가씨가 그런 걸 할 능력이 되나? 박 차장은 원래 하던 일이 정확히 뭐였지?

원래 박 차장님이 하던 일은 총무였어요.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 다요. 회계랑 세무 처리도 하셨고.

그런데? 지금은 그걸 그 아가씨가 해?

혜미 씨가 하는 일은 원래 박 차장님이 하던 일의 삼분의 일쯤 될 거예요. 독일에 브로슈어 오는 것들 정리하고, 울산이나 포항으로 부품 보내고, 청소 아주머니들한테 청소할 곳 알려주고, 그런 것들이요. 우리 교육교재들 제본하고, 음료수랑 커피 캡슐 같은 것도 채워놓고요.

그러면 나머지 삼분의 이는 누가 하지?

테이블 반대쪽에서 누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는지 폭소가 터졌다. 은영은 괜히 사장 옆자리에 앉았다며 후회했다.

삼분의 일은 제가 합니다. 독일에서 이런저런 문의가 오면 제가 답장하고 회계나 세금 관련 일도 제가 넘겨받았어요.

최 과장은 원래 하던 일이 뭐였지?

영업 지원이요. 사장님 포항 계실 때 저랑 일 많이 하셨잖아요!

맞다, 맞다.

사장이 자기 이마를 때렸다.

그러니까 박 차장이 원래 하던 일의 삼분의 일은 그 아가씨가 하고, 또 다른 삼분의 일은 최 과장이 넘겨받았고, 그러면 나머지 삼분의 일은 누가 해?

나머지 삼분의 일은…… …… 그냥 없어졌어요. 원래 박 차장님이 닐스 사장님 개인 비서 역할을 하셨거든요. 통역도 하고, 레지던스 호텔도 잡아주고, 애기들 학교 등록도 해줬어요. 그런 건 이제 더 할 필요가 없게 됐죠. 또 어떤 일들은 다 조금씩 나눠하게 됐고요. 전에는 엔지니어들 출장 갈 때 비행기 표나 호텔 예약을 다 회사에서 해줬잖아요. 그게 원래 박 차장님이 하셨던 건데, 지금은 출장 가는 사람들이 각자 예약하고 영수증도 직접 시스템에 입력하는 식으로 바뀌었어요.

해외 출장 그거 얼마나 귀찮은지 과장님은 모르시죠? 저희가 출장을 가면 다 공장엘 가는 거예요. 공항에 내려서 한참 가요. 도시하고는 완전 반대 방향으로. 잠도 다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자요. 그런데 여자들은 맨날 화장품 사달라, 뭐 사달라, 왜 너만 외국 가냐……

갑자기 엔지니어가 끼어들었다

이 대리님, 지금 그 얘기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럼 무슨 얘기 하는 건데요?

성혜미 씨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제가 지금 혜미 씨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다니까요. 저희가 메뚜기처럼 남의 공장만 다니다가 우리 회사에는 가끔 들어오잖아요. 그런 날에는 딸꾹! 오늘은 남의 회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다, 이런 반가운 느낌이 있는데! 성혜미 씨 제일 처음 봤을 때 제가 사무실을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모르는 사람이 문 앞에 앉아서는, 저한테 눈길을 주지도 않아서.

뚱한 표정인 건 그렇다 쳐도, 지각은 왜 그렇게 자꾸 하는 거야? 아침에 자리가 자주 비어 있더라.

이사도 끼어들었다

요즘 지하철 1호선이 자주 고장 나서 그렇대요. 혜미씨가 인천에서 1호선 타고 오거든요.

나도 도봉구에서 출근해요. 지하철이 고장 나는 거야 고장 나는 거고, 회사는 제시간에 와야지, 그리고 그게 진짜 지하철 고장 때문인 거 맞아?

보면 뭐 일을 하는 거 같지도 않아요. 뚱한 얼굴로 맨날 무슨 뮤지컬 사이트랑 일본 여행 사이트 같은 거 찾아보고 있어. 점심때도 맨날 혼자 나가서 밥 먹고. 커피점에 혼자 앉아서 책 읽고 그러는 거 내가 자주 봤어요.

엔지니어가 말했다. (유심히들 봤네. 걔가 진짜 이다해 닮았나?) 은영은 생각했다.

그 아가씨 그거 안 되겠네. 잘라! 자르고 다른 사람 뽑아!

사장의 말에 다 같이 웃었다. (자기한테 그럴 힘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은가 봐.) 그날은 거기까지였다.

 

질문 : 혜미에 대한 인상을 말해 보자.

 

 

 

월요일에는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일들을 거의 잊은 상태였다. 그랬다가 여자아이의 문자메시지 때문에 회식 때 나눴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거의 다 왔는데 좀 늦을 거 같아요. 지하철이 중간에 멈췄어요. 죄송합니다.

십오 분량 지각한 여자아이는 은영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날은 오전에 일이 많아서 화장실을 갈 틈조차 없었다. 은영이 떠안게 된 회계 업무는 분량 자체는 대단치 않았지만 일들이 월말에 몰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봤더니 여자아이가 무료한 표정으로 마우스 버튼을 까딱까딱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또 뮤지컬과 일본 여행 정보 검색하나? 이번 마감을 하고 나서 천천히 회계일을 좀 가르쳐볼까?)

은영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회계 담당자는 독일 본사의 매니저와 메일을 주고받아야 한다. 비용 처리에 대해서 본사 매니저가 궁금해 하는 사항들이 많았다. 특히 각종 접대비에 대해서. 여자아이의 영어 실력이 그런 문의 메일에 답할 수준은 아니다. (점심은 대충 때워야겠다. 혜미에게 밥 먹고 들어올 때 샌드위치나 사다 달라고 부탁해야지.)

그때 여자아이가 걸어왔다.

과장님, 저 밥 먹고 병원에 갔다가 조금 늦게 들어와도 될까요?

미묘하게 어긋난 타이밍이었다. 사무실에는 은영과 여자아이뿐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이제 은영은 굶어야 했다.

왜요, 어디 아파요, 혜미 씨? (그런 말을 하려거든 좀 미리 하란 말이야. 그리고 무슨 이유로 병원에 가는지, 몇 시까지 들어올 예정인지도 제발 좀 같이 말해줘.)

제가 옛날에 버스에서 내리다 오토바이에 치인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 계속 다리가 저려서…… 그런데 이 근처에 좋은 한의원이 있다고 해서 다녀보려고요.

그래요. 다녀와요. (한의원?) 몇 시까지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가 버스로 한 정거장이거든요. 늦어도 두 시 반까지 올게요. 괜찮을까요?

그래요. 다녀와요.

돌아올 때 소견서를 한 부 받아올까요? 그냥 이렇게 갔다 오면 제 맘이……

은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소견서는 당연히 제출해야지. 이 아가씨가 지금.)

 

질문 : ‘혜미 씨’를 여자아이로 서술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이 아가씨 어디 갔나?

사장이 여자아이의 자리 앞에서 어슬렁거리다 은영에게 와서 물었다. 여자아이가 한의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보름 남짓 되었을 때였다.

지금 병원 갔는데요 뭐 시키실 일 있으세요? 급한 거면 저주세요.

사장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여자아이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다니는 병원이 어디인지, 언제부터 다녔는지 왜 다니는지 급기야는 혜미가 병원에서 받아온 소견서까지 달라고 했다 (뭐야,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생 병원 보내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나?)

하지만 사장의 표정이 딱딱했던 것은 은영의 짐작과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사장은 휴대폰을 꺼내 소견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언제 문을 열고 닫는지, 점심시간은 언제인지를 물었다.

퇴근하고 나서도 갈 수 있는 병원이면 이 아래 혼을 내주려 그랬는데.

사장이 입맛을 다셨다. 은영은 사장이 그런 사소한 일까지 확인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이 아가씨는 이렇게 병원 갔다 온 날에는 퇴근을 늦게 하나?

사실 혜미 씨 근태가 좀 문제이긴 한데요, 그렇다고 제가 퇴근을 늦게 시키진 않고 있습니다. 혜미 씨 일 자체가 많지 않거든요. 일도 없는데 굳이 사무실에 남길 이유는 없잖아요. 벌주는 것도 아니고.

그 아가씨가 하는 일, 몰아서 하면 하루에 네 시간만 해도 충분한 거 아냐?

그렇긴 합니다.

그러면 그 아가씨한테 연봉을 육십 퍼센트 줄 테니 오전 근무만 열심히 하고 가라면 어떨까? 우리는 인건비 절감해서 좋고, 그 아가씨도 그 시간에 뭐 다른 걸 준비할 수 있으니 좋지 않겠어? 공무원 시험 같은 거.

예에……

아니면 그냥 자르자. 최 과장이 이 아가씨 하는 일 다 넘겨받고 그만큼 연봉을 올려 받으면 어때? 한 이천만원이면 돼?

사장님, 혜미 씨 연봉이 이천만원이 안 돼요. 그건 오히려 비용이 더 드는 거예요.

이 아가씨 연봉이 이천이 안돼?

한 달에 백오십오만원 받습니다.

백오십이면 백오십이지 백오십오만원은 또 뭐야?

작년까지는 백오십이었는데 올해 오만원 인상해준 거예요.

누구 맘대로?

박 차장님이 닐스 사장님한테 부탁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오만원 인상해봤자 일 년에 육십이잖아요.

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아가씨가 박 차장 출산휴가 갈 때 들어왔다며. 그러면 몇 달 더 있으면 우리 회사에서 일한 지 이년이 되는 거 아냐? 이 년 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거 아냐?

알바도 그 규정 적용받나요?

은영은 뜻밖의 질문에 허둥댔다.

내가 사장 달고 서울에 와서 처음 거래처 사람들 만나고 인사할 때 그중 한 명이 그러더라고. 문 앞에 있는 아가씨 자르라고. 회사에 들어온 고객들이 그 아가씨 얼굴 보고 첫인상 안 좋게 갖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 아가씨를 처음 봤을 때 똑같이 생각했거든. 최 과장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조직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게 중요해. 지금 그 아가씨가 상습 지각하고 근무 시간 중에 병원 다니는 게 그 자체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지는 않지.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러다 다른 직원들도 우리 회사는 지각쯤은 해도 상관 없구나, 나도 평소에 지병 있던 거 근무 시간 중에 통원 치료를 받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겠어?

할 말이 없어진 은영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앞에서 어슬렁거리니까 최 과장은 뭐 시키실 일 있느냐고 급한 거면 자기가 하겠다고 하잖아. 나는 여태까지 그 아가씨가 그러는 걸 본 적이 없어. 사무실에 손님이 와도 불러서 시키기 전에는 차 한 잔을 내오지를 않아. 외국인 사장들이야 한국 지사를 그냥 거쳐 가는 곳으로 여겼으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았겠지. 나는 아냐.

 

질문 : 사장의 혜미에 대한 생각을 말해 보자.

 

 

이게 그 아가씨를 자르라는 얘기야? 나보고 자르라고 시킨 거야?

은영은 남편에게 물었다 그녀는 남편과 집에서 배달 치킨을 먹고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 자기네 사장이 그다음에는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아가씨가 그때 막 사무실에 들어오고 사장님도 전화가 와서 더 말을 못했어. 그냥 사장님이 뭐라고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건가?

애매하네. 그 아가씨 하는 일 자체가 참 애매한 거 같아. 원래 총무니 홍보니 마케팅이니 하는 자리가 일을 해도 잘 티가 안 나잖아. 그런 비슷한 관리직이 두세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끼리끼리 뭉치면서 자기들 바쁘다, 일 많다, 그런 티를 낼 텐데.

그렇지, 우리 회사가 제대로 된 회사가 아냐. 그냥 독일 본사의 아시아 영업점 겸 애프터서비스센터인 거야. 그러니까 영업사원이랑 엔지니어만 필요한 거고, 장부 보고 잔일 해주는 사람은 한 명 정도 필요한데 그게 그 아가씨인 거고. 영업직이나 기술직들 보기에는 어딜 나가서 계약을 따오는 것도 아니고 기계를 고치고 오는 것도 아니니까 이 아가씨는 뭐 하는 사람인가 하지. 이 아가씨가 처세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자기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관리직이 아니라 영업 지원이야. 내가 뭘 하는지는 영업직들이 잘 알아.

박 차장한테는 어땠어? 그 사람은 총무였다며.

그게 차장님하고 이 아가씨의 결정적인 차이점인데, 차장님은 독일인 사장이랑 친하고 본사의 직속 상사들하고도 의사소통이 잘 됐잖아. 그러니까 잘은 모르지만 뭔가 하는 일은 있나보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차장님은 오히려 사내의 숨은 권력자였어.

관리직이 잘하면 또 그렇게 되지. 어느 회사나 인사나 재무가 제일 막강해.

나 이 아이 어떻게 해야 돼?

자기가 하기 나름 아닐까? 자기네 사장도 별생각이 없을걸. 사장 자리에서 생각할 게 얼마나 많을 텐데 뭘 알바생 거취까지 깊이 고민하겠어. 자기가 당장 자르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할 거고 자가 몇 달 더 쓰겠다고 해도 그러라고 하겠지. 이제 자기도 과장이잖아. 슬슬 어떤 문제는 직접 결정을 해야 할 단계지. 내 생각에는 박 차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 잘했어. 자기가 결정 내리고 사장에게 승인받는 거.

맞아 차장님이 그런 걸 잘했어.

자기도 그렇게 해.

당신이라면 내 처지에서 어떻게 하겠어?

그냥 자르고 다른 사람 뽑을 거 같은데. 그 아가씨 일하는 태도가 바뀔 거 같지도 않고, 주변 상황이 바뀔 거 같지도 않으니까.

그건 싫은데.

?

불쌍하잖아 지금도 거의 소녀 가장인 거 같던데. 아휴, 박 차장님은 왜 이런 애를 뽑아서 사람을 이렇게 애를 먹인담.

내 생각에는 박 차장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문제야.

내가 뭐.

그 아가씨도 처음 자기네 회사에 면접 볼 때에는 그런 태도가 아니었을걸? 성격이야 싹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최소한 근태는 나쁘지 않았을 거야 그걸 자기가 망친 거지. 지각해도 아무 말 않고, 손님 접대를 안 해도 아무 말 않고, ‘불쌍한 애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아무 지적도 안 했지? 그러니까 애가 그렇게 된 거야. 사람들이 다 자기나 나 같지 않아 어떤 사람들한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동기를 부여해 주고 자세를 교정해주고 질책을 해줘야 돼. 자기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그걸 안 한 거지.

 

질문 : 은영과 남편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을 말해 보자.

 

 

 

은영은 다음날 오후에 회의실로 여자아이를 불렀다 조직 생활을 하려면 붙임성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에 여자아이는 눈이 붉어졌다.

붙임성이 있다는 게 뭐예요? 사람들이 자꾸 저보고 퉁명스럽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모르겠거든요. 손님이 오시면 저도 뭔가 내드려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가 제대로 된 찻잔도 없고 받침도 없잖아요. 그러면 종이컵에 받침도 없이 내주기도 민망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제가 학교에서 일할 때에는 종이컵에 담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었거든요.

그냥 아무거나 내와도 괜찮아요. 정 모르겠으면 사장님이나 손님한테 물어봐도 되고요. 음료수 뭐 가져올까요? 커피나 주스, 어떤 걸로 가져올까요. 그렇게 그러면 그 사람들 대답도 뻔해요. 아무거나 가져다주세요, 그럴 거예요.

저번에는 캔커피를 들고 갔더니 손님이 그러시던데요. 이거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냐고.

그건 사장님이랑 친한 분이 농담하신 거겠죠. 웃으면서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사장님한테 뭘 여쭤보기도 그런 게, 사장님은 너무 과묵하시잖아요. 그래서 말 걸기가 겁나요. 또 사투리도 심하고 말도 너무 빠르셔서, 사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다시 여쭤보기가 무서워요.

우리 사장님 그렇게 과묵한 분 아니에요.

제가 찻잔이랑 컵받침 세트라도 하나 살 수 있었으면 이런 고민을 안 했을 텐데, 제가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살 수가 없잖아요.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억울하죠. 사장님이 저를 그렇게 지켜보시는 줄 몰랐어요.

여자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우리 구매 카드로 결제를 해줄 테니까 이따가 하나 사요. 아무튼, 사장님이 혜미 씨 붙임성 이야기를 저한테 여러 번 지적을 하셨어요. (넌 혼이 나도 이미 여러 번 혼이 났어야 했다구.)

과장님이 사장님한테 혼이 많이 나셨군요 저 때문에.

혹시 혜미 씨는 월급을 팔십만원이나 구십만원 정도 받고 오전 근무만 할 생각은 없어요? 뭐 시험 같은 걸 준비하는 게 있다면 그게 훨씬 유리할 거 같은데.

그 말에 갑자기 여자아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은영은 상대가 여태까지 흘리던 눈물이 모두 연기였던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사장님이 그래요? 사장님이 그러자고 하세요?

사실 혜미 씨가 하는 일이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고, 또 그러는 편이 혜미 씨가 병원 다니는 데에도 좋을 것 같고…… 하루 네 시간씩 오전만 근무하고 월 구십만원을 받으면 시간당 임금은 오히려 올라가는 셈인데.

과장님, 저 여기 출근하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려요. 왕복 세 시간이 드는데 지금보다 월급이 깎이면 계속 다닐 이유가 없어요. 야간대학 학자금 빚진 것도 갚아야 하고…… 병원 다니는 것도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게 아니고 아파서 그러는 건데 그걸 트집 잡으시면 안 되죠.

은영은 알았다고 하고 여자아이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오전 근무 제안에 냉정해졌던 여자아이는 다시 슬픈 표정을 짓고 자리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자 직원들이 여자아이가 우는 모습을 알아 차렸으나 감히 말을 걸지는 않았다. 은영은 우는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가 없어 직접 은행에 다녀왔다. (여자가 운다고 사람들이 신경써 주는 것도 젊고 예쁠 때뿐이야. 네가 그렇게 변명만 늘어 놓지 않았어도 내가……)

 

질문 : 은영이 혜미에게 한 제안을 내가 받았다면 어땠을 것 같은가? (내가 혜미라면 어떤 근무 환경인가?)

 

 

 

여자아이는 싹싹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보면 로봇처럼 어색하게 인사하고, 손님이 오면 쭈뼛거리며 새로 산 찻잔 세트를 들고 사장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부지런해지거나 더 적극적으로 일하지는 않았다. 은영에게 더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은영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돌아선 건 며칠 뒤였다. 파업 중인 A자동차회사에서 긴급이라고 적힌 공문이 날아왔다 불법파업 규탄대회를 여의도공원에서 열 예정이니 협력업체에서도 직원을 한 명씩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장은 현장에서 참석 확인증을 발급한다는 얘기에 여자아이를 보내라고 했다.

그 아가씨 하루쯤 없어도 괜찮지?

여자아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저 여의도공원이 어디인지 모르는데요.

아니, 혜미 씨. 여의도공원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 내가 검색해서 찾아줄까요?

과장님, 그게 아니고요. 사실은 제가 다리가 계속 아파서요. 저번에 소견서에도 적혀 있었잖아요. 삼 주일 정도 안정하면서 관찰을 해야 한다고…… 그 규탄대회 가면 계속 서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소견서 받아온 지 삼주일 되지 않았어요?

아직 안 됐는데요.

혜미 씨, 그러면 이렇게 해요. 일단 가서 분위기 보다가 근처에 카페 같은 데 가서 쉬어요. 그럴 분위기가 아니고 정 못 있겠으면 나한테 전화를 하고.

집에 돌아온 은영은 남편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진짜 깜찍하지 않아? 여의도공원이 어디인지 모른대. 가라고 하니까 나중에는 나를 확 째려보더라고.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아군 적군도 구별을 못해? 사장님이 자르라고 할 때 막아준 게 누군데.

그 아가씨 진짜로 다리에 무슨 장애가 있는 건 아니야?

장애가 있었으면 병원 소견서에 그렇게 써 있었겠지. 무슨 인대손상 의심이라고 써 있었어. 그것도 한의원에서 떼어온 소견서야. 지금 내가 그 병원에 가서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도 똑같은 소견서 받아올 수 있을걸? 그리고 그렇게 다리가 아프면 매일 아침마다 지하철은 어떻게 한 시간 반씩 타고 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내일 사장님한테 얘기하려고. 자르자고.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그 아가씨 자르고 내 연봉 올려달라고 하는 건? 사장님이 진짜로 이천만원을 올려줄까?

그렇게는 안 올려주지 그리고 설사 올려준다고 해도 그러지는 마.

?

어느 회사고 간에 연봉 올려주면 반드시 그 돈값 뽑아먹어. 자기가 지금 하는 일에 그 아가씨 일만 딱 추가될 거 같아? 안 그래. 사장님이 포항에 있을 때부터 자기한테 영업일 시키려고 그랬었다며. 영업지원만하면 미래가 없다고, 진짜 영업을 배워야 한다고.

, 맞아

만약 이 일로 연봉이 올라가면 사장님이 슬슬 영업일을 자기한테 떠넘길걸? 그러면 어느 순간에 자기는 지금 하는 일의 두 배를 하게 될 거야. 내 생각에는 자기 사장이 이천을 한 번에 올려줄 리도 없어. 사 년 동안 매년 오백씩 올려주는 걸로 하자든가 그 비슷한 식일 거야. 그리고 그거 물고 늘어지면서 연봉협상 때 다른 인상 요인은 반영하지 않으려고 하겠지. 여러 가지로 손해야.

그러면 어떻게 해?

새로 알바생을 뽑자고 해. 그 대신에 오전 근무만 하는 걸로. 그러면 그 아가씨한테 들어가던 돈도 확 줄일 수 있잖아. 그만큼을 자기 연봉에 조금 반영해달라고 해. 아무래도 알바생이 전일근무 않으니까 자기 부담이 늘어났다고. 그러면 일은 일대로 늘어나지 않고 돈은 조금 더 받을 수 있게 되지.

 

질문 : 혜미가 잘리는 이유를 말해보자.

 

 

 

여자아이를 해고하고 싶다는 말에 사장은 단박에 찬성했다. 은영이 오전 근무만 하는 알바생을 쓰고, 알바생에게 일을 다 맡기지 않는 대신 다음 연봉협상 때 그 점을 어필하겠다고 제안하자 사장은 제법인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해고 통보를 들었다 이달 말까지만 나와달라, 지금부터 다른 일자리 찾고 틈틈이 면접 보러 다녀도 된다는 말에 여자아이는 뭐라 대답하지 않았다. 은영은 이 모든 것이 사장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설명했다. 근무 기간 이 년을 채워서 정규직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건 우리로서도 너무 큰 부담이니까.

아무래도 첫 한국인 사장이 되시다 보니까 이것저것 의욕이 많이 생기나봐요. 자기 스타일대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은……

결국 싹싹하게 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네요.

여자 아이가 말했다

혜미 씨,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요? 다른 약속이 없으면 같이 밥이나 먹을래요?

학원에 가야 해서요.

학원? 무슨 학원?

영어학원이요 영어가 중요한 거 같아서요.

은영과 여자아이는 다음날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자아이는 바비큐 립을 주문했다 (왜 못사는 집 애들은 뭘 사주겠다고 하면 꼭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해서 바비큐 립을 시키는 거지?) 은영은 여자아이에게 영어학원에 대해 물어 보았다.

종로에 있는 학원이에요 저녁 일곱 시부터 강의를 듣거든요. 강의를 공짜로 듣는 대신에 칠판 지우고 청소하고 그런 일들을 해요.

그래서 매일 저녁 그렇게 일찍 갔구나.

수강생들 시험 친 것 채점도 해요. 단어 시험 같은 거요. 채점은 저도 공부가 되는 거 같아서 좋아요. 종로에서 인천까지는 처음에 열차를 잘 타면 중간에 안 갈아타도 되거든요. 또 그 시간에는 자리가 많아서 앉아 갈 수 있으니까…… 지하철에서 막 단어 외우면서 가요.

여자아이는 자신이 했던 다른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도 말했다. 주유소, 식당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피시방 놀이공원에서 일했고, 호텔에서 서빙과 하객 대행도 해봤다고 했다

제가 어딜 가도 자꾸 안 좋은 꼴을 당하니까 사람들한테 마음을 못 열고 뚱해 있는 거 같아요.

우리도 혜미 씨랑 더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알바할 때도 태도가 별로 안 좋았나보구나. 그래도 유흥업소는 가지 않았으니 용하다고 해야 하나?) 회사라는 게 그래요. 조직에서는 합리적이라고 결정하는 게 당하는 개인 입장에서는 참 매정하죠. 나도 혜미 씨랑 똑같은 처지예요. 이러고 일하다가 회사가 너 나가 그러면 짐 싸야지.

합리적이라고요…… 과장님, 지난달에 태국 바이어들 왔을 때 환송회 한 거, 제가 영수증 정리하다 보니까 일차 밥값만 제 월급보다 더 나왔던데요. 그 환송회에 서울 사무실 직원들이 다 갔잖아요. 사장님 오신 다음에 그런 식으로 회식을 몇 번이나 하셨잖아요. 그것도 합리적인가요?

 

질문 : 혜미 씨의 일과 월급에 대해 말해 보자. (적절한지, 필요한 자리인지, 회사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등)

 

 

 

31일이 되었다 은영은 선물 받은 뒤로 한 번도 쓰지 않은 명품 스카프를 종이가방에 넣어 회사에 들고 갔다. 월말이라 오전에는 또 바빴다. 여자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날까지 저러다 갈 건가.)

저녁에 은영은 선물, 이라며 여자아이에게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여자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가방을 받았다

혜미씨도 이런 아이템 하나쯤은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과장님, 이걸 저한테 왜요……?

여자아이는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하다 들킨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마지막 날이니까, 작별 선물로 가져왔어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마지막 날이라니요?

시침을 뚝 떼는 연기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은영은 그만 웃고 말았다.

혜미씨, 내가 혜미씨한테 이달 말까지만 나오고 그만 나오라고 했잖아. 그게 기억이 안 난다고 할 참이야? 그래서 우리가 아웃백도 같이 가고 그랬잖아.

이제 그만 나오라고 하기는 하셨지만 언제부터 그만 나오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잖아요.

혜미 씨, 정말 기억이 안 나요? 삼 주쯤 전에 회의실에서 얘기했잖아요.

회의실에서 과장님이 저더러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말씀하신 건 기억나죠. 그래서 다음날 아웃백 갔던 것도 기억나고. 그런데 과장님이 언제부터 그만 나오라는 말씀은 안 하셨잖아요. 저는 과장님이 통보서를 언제 주실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통보서?

해고를 할 때에는 서면으로 예고를 해주셔야죠, 과장님. 동네 편의점에서도 그렇게 해요. 그리고 퇴직금 얘기 같은 것도 전혀 안 했는데, 저는 당연히 당장 관두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죠.

퇴직금?

은영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되물었다 여자아이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바가 무슨 퇴직금이냐 라고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법규를 찾아보니 아르바이트생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일주일에 열다섯 시간 이상 일 년 이상 일한 피고용인이라면, 해고는 반드시 서면으로 통보해야 했다 명확한 이유를 명시해서, 삼십 일 전에. 회사가 이걸 어기면 지방노동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하면 된다. 그러면 사장에게 출석요구서가 날아간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미리 잘 알아보질 못해서……

은영이 말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습니다.)

좋은 공부 했다 생각해야지, . 나도 법이 이런 건 지금 처음 알았네. 대한민국 좋아졌다 정말.

사장은 웃었다

해고 통보서를 보내는 것도 안 될 거 같습니다. 나중에 이걸 또 어떻게 부당해고라고 우길지 모르니…… 오 인 이상 사업장이고, 그 아가씨가 육 개월 이상 월급 근로자로 일했기 때문에 확실히 하려면 권고사직 형태로 하는 게 좋답니다.

그래서 그 아가씨는 돈을 얼마를 달라는 거야?

권고사직이면 위로금으로 석 달 치 임금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고 있습니다.

, . 괜찮아 나는 그 돈은 아깝지 않아 왠지 알아?

아니요.

그 돈이 그 아가씨가 아니라 최 과장한테 가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그리고 최 과장은 그 돈값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여자아이는 삼 개월 치 임금을 현금으로 받고 사직서를 썼다. 서류상으로는 새로 시작한 달 말일까지 근무하는 걸로 되어 있었지만 사직서를 쓴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거 받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

사장은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말했다 은영도 그럴 생각이었다. 여자아이 앞에 있으면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질문 : 회사와 혜미의 생각 차이에 대해 말해보자.

 

 

구인 사이트를 통해 새 아르바이트생을 뽑았다 해맑은 인상의 청년이었다. 서울 시내 괜찮은 대학을 휴학 중이었고, 집안 형편도 나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고 채용했다. 월급 칠십오만원을 주고 오전 근무만 시켰다. 처음부터 근무 기간은 오월이라고 못을 박아두었다.

두 달이 지났을 때쯤 여자아이에게서 메일이 날아왔다

과장님, 제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4대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았더라고요. 알바몬에서 상담을 받아보니까 그게 불법이라며, 이런 경우에 보험취득신고 미이행으로 회사를 고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요. 회사가 부담하지 않았던 4대 보험료만큼을 저에게 따로 주실 수 없을까요?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은영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장 변호사님은 뭐래?

남편이 물었다. 장 변호사님은 은영의 아버지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고소를 할 필요도 없대. 무슨 노동청? 노동위? 거기다 진정만 넣으면 된대. 보험에 따라서 페널티가 다 다른데, 건강보험은 벌금이 있고,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은 벌금 없이 과태료만 있대.

그러면 그 여자애가 하는 말이 다 맞는 거야?

, 황당하지?

어떻게 할 거야? 사장님한테 말할 거야?

몰라. 어떻게 하지? 말해야 되냐? 독일 사람들은 이런 거에 엄청 신경을 쓰거든. 걔네들은 기본적으로 한국 직원들을 불신해. 자기들 몰래 법 어기고 횡령하고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근로조건 그런 것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서 슈퍼바이저가 따로 있어. 그러니까 걔네들 입장에서는 이건 큰 건이지. 한국 지사가 돈 아끼려고 파트타이머를 고용해놓고는 공적 보험에 가입을 안 시켰다, 심지어 근로계약서도 작성을 안 했다, 이런 거는…… 그 여자애도 그걸 아는 거지. 그러니까 나한테만 메일을 보낸 거고.

그래서, 장 변호사님은 어떻게 하라셔?

남편이 물었다

그냥 돈 주고 합의를 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래. 그 대신에 합의서에 이후에 소송을 포함해서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다고 적으래. 그런데 그 돈은 회사 돈으로는 못하지. 근거를 남기면 안 되니까. 걔가 얼마나 달라고 할까? 오백? ?

설마 뭐 이걸 갖고 천 만원이나 달라고 하겠어.

우리 사장님 연봉이 삼억이야. 천 달라고, 그 대신 독일에 알리지 않겠다고 하면 줄걸?

이렇게 하자. 일단 그 여자애한테 전화를 걸어. 그리고 얼마 원하는지 물어보자. 그래서 오백 미만으로 달라고 하면 그냥 우리가. 주자 합의서 받고, 오백 넘게 달라고 하면 그때는 사장님한테 말하고.

그래도 괜찮아?

주식으로 잃은 셈 치지 뭐.

생각해 보면 이게 다 박 차장 그 인간 때문이야 영어 좀 하는 거 말고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여자였어. 외국계 회사에 그런 여자들 많아. 뭘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그렇게 뽑아놔? 그것도 그렇게 딱 뒤통수칠 애로?

은영이 전화기를 집어 들다 말고 이를 갈았다

그건 자기도 몰랐잖아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 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자기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자기나 나나, 월급 떼먹는 주유소 사장님이랑 멱살잡이해본 적 없잖아?

부아가 치밀었지만 남편 말이 옳았다 은영은 입술을 깨물고 전화를 걸었다.

뭐래?

전화를 끊자 남편이 물었다

은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백오십만원 달래.

그들은 그날 저녁 술을 마셨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정말, 맥주를 마시다 말고 은영은 한숨을 쉬었다.

 

질문 : 독일과 우리나라 기업 운영의 차이를 말해 보자.

 

질문 : 혜미가 달라는 돈과 은영이 생각하는 돈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날 사무실에 찾아온 여자아이는 돈을 받고 합의서에 서명한 뒤에도 바로 나가지 않았다.

과장님, 경력증명서 다섯 부만 받을 수 있을까요?

여자아이가 물었다

경력증명서?

, 전에 까먹고 못 받아서요.

(그 증명서를 보고 너를 경력 채용하려는 회사가 나한테 평판 조회를 부탁하면 내가…… 아니, 됐어. 그런 걸 너한테 가르쳐줄 필요는 없지. 너는 모르고 나만 아는 세계도 있거든.)

은영은 입을 다물고 영문 경력증명서를 다섯 부 발급해주었다. 여자아이는 그 증명서를 유심히 읽었다

과장님, 제가 여기 스태프 어시스턴트라고 돼 있는데요, 혹시 어드미니스트레이터로 바꿔주실 수 없나요? 제가 여기서 혼자 총무 일을 한 거지, 누구를 어시스트한 건 아니잖아요.

은영은 여자아이가 원하는 대로 서류를 만들어주었다 여자아이가 사무실을 나설 때 은영은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이 돼 있던 거니?

여자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말문이 막힌 듯했다 여자아이는 그렇게 몇 초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여자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여자아이는 가방에 손을 넣어 봉투를 확인했다. 봉투를 땅에 떨어뜨리고 돈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났다. (이렇게 주지 말고 계좌로 바로 부쳐줬으면 좋았을 텐데.) 건물을 나서자마자 은행을 찾아갈 참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독촉을 받고 있었다. 여전히 발목이 아팠다. 인대 수술을 받느라 퇴직금을 다 썼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질문 : 혜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 같은가?

 

 

 

 

 

알바생 자르기(8단원 주체적 감상)(교사용.hw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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