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나무

(학교 일기 48)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본문

원고

(학교 일기 48)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나무와 들풀 2025. 1. 5. 11:53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라는 관용구 같은 구절에서 ‘다사다난’이 절절하게 다가올 만큼 작년 일어났던 일들은 우리 마음을 힘들게 했다. 새해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희망을 꿈꾸는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다.

학기가 끝나지 않아 아직 생활기록부는 미완성이다. 내일 학교에 출근하면 자율활동과 진로 상황을 완성해야 하고, 행동 발달 상황 및 종합 의견도 쓰다가 세 명 학생이 남았다. 1500 바이트가 최대 용량인데, 쓰다 보면 누군 그 용량을 넘기고 누군 한창 모자란다. 넘기는 학생은 꾹꾹 눌러가며 압착해서 표현하다 보면 한창 모자란 학생이 눈에 밟혀 행여 내가 못 본 게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억지로 한자 한자 짜내다 보니 어제 완성하지 못하고 퇴근했다.

출석부도 12월과 1월 정리해야 하고, 출결 관련 서류도 확인해서 맞춰서 결재받아야 한다. 독감이 유행해서 서류도 많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그리고 10월 1일 임시공휴일의 여파로 방학날이 월요일로 늦춰지는 바람에 종업식날 체험학습 신청한 학생도 많은 편이다. 체험학습 보고서는 개학날 받는 게 안 된다고 하니 방학 중에 받아서 결재를 받아야 출결 서류는 완성된다. 학기말 성적표 개인통신문도 32명 것을 써야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할수록 해야 할 일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하루는 정신없이 빨리 가는데, 방학은 늦게 온다.

이제 헤어짐을 며칠 앞두고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하는데, 어제 한 해의 마지막 날 내가 한 말은,

“여러분들 책상 서랍과 사물함 안에 개인 물건 있으면 안 돼요. 내년 이 교실 사용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자기 물건 오늘부터 조금씩 가지고 가요. 방학식 날 모두 빈 것이 확인된 사람만 집으로 보낼 거예요.” 였다.

나도 고고하고, 좋은 선생이 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애들 다 보내고 빈 교실에서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말이 왜 안 나오고 그런 잔소리를 해야 했던가 하며 자책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런 나를 나무라기라도 하듯 종례가 끝나고,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몇몇이 남아 소리를 모아
“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맙다. 
오늘 새벽 해맞이 가려고 나가는데 스마트 폰엔 새벽 12시 10분에
“00쌤 새해복 많이 받으십쇼”라고 톡이 와 있다. 새해 타종 듣고 바로 인사를 올렸나 보다.

이래저래 미안한 마음에 첫날 첫해를 찍어 반톡에 올렸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사랑한다 하고 덧붙여 올렸으면 좋았을 걸. 무뚝뚝하게 “해피 뉴 이얼”이라 했다. 늘 마음과 행동은 다르다. 뭐 어쩔 수 없다. 나 같은 담임 만난 것도 운명이었으니까.

올해는 다정하고 좋은 담임 만나 격려받고, 칭찬받고, 인사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됐고! 이제 성적표 개인 통신란 써야 일정대로 결재받고 학생들에게 종업식날 나눠줄 수 있겠다. 빨리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