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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교육하다 랑시에르

나무와 들풀 2020. 12. 28. 20:31

2019124일 철학으로 교육하다 4

 

랑시에르의 지능의 평등을 이야기 했다. 학식(학교지식)과 지능. 보편적 가르침을 이야기 한다. 보편적 학습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지능은 평등하다. 이에 반해 비고츠키는 일반화와 다르게 개념화를 통한 추상화가 있는데 이것은 학교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의 보편화가 시작되면서 초등교육의 보편화가 된다. 문자로 교육이 되며 계층 상승을 가능하게 하였다. 랑시에르는 학교지식을 무시하지만 과연 학교 지식이 문제가 되는가? 그것을 도구화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랑시에르는 교육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닌가? 학식을 계층화하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아닌가? 가르친 방법이 아닌 가르치는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다.

아이들이 공부나 삶에 의지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적 관계가 중요하다.

비에스타는 교육적 관계12가 있고, 둘 다 있어야 한다. 1은 한 아이를 교사가 동등한 인간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편하고 좋은 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젠바크는 교사는 아이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히스토리 보이즈헥터 교사가 죽고 나레이션.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아이가 나중에 무엇이 될 지는 모른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가능성, 성적으로만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보고 아이들을 대하는 것.

교육적 관계

존재론적 차원 나란히 있다. 지켜봐주는 것.

삶과 배움에 의지가 생긴다. 이런 관계가 랑시에르가 말하는 지능의 평등과 중요하다. 예술 교육에서는 이런 데 초점을 두고 교육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아렌트의 세계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것. 학교 지식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에 가한 횡포를 넘어서서 학습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교수적 관계 교과지식으로 교사가 권위를 가져야 한다.(아렌트) 이건 랑시에르의 보편적 가르침을 넘어서야 한다.

구성주의 학습과 구성주의 교수는 다르다. 구성주의 교수론에서 교사의 역할을 무력화시켰다. 가르침을 재정립하였다.

초월은 학생 바깥에서 무엇인가가 들어가는 것, 타자성(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구성주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학교에 오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를 넘어서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초월을 경험하는 것은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인지적 자아로부터 분리가 일어날 때. 아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침과 동시에 진리를 인식하는 조건도 줘야 한다.

교사가 교육내용에 대한 정서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야 한다. 주관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방식을 보여줌으써 학생도 그 지식과 관계 받는 방식을 알게 된다. 직접전달이 아니라 간접전달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학생이 눈치를 채는 것과 비슷하다.

( 나는 교사라면 온갖 방법을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식과 관계 맺는 법을 아는 것이 빠지면 단순히 문제풀이이지 않을까?)

-로부터 배우는 것;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것. 점진적 과정

-에 의해 가르쳐지는 것:선물이다. 초월로 가르침을 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타자성을 안내하는 것이다. 내적 사건이다. 영적인 사건이다.

가르침과 배움이 일치하지 않고 그것이 교육의 실패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교수학습관계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라인바크는 나를 내 배경에서 건져준 사람이다. 전통적이든 진보적이든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줬다는 공통점. 세계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자신만의 방식이다.

가르침과 배움을 일치시키려는 욕망 때문에 교사들은 괴롭다.

교육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의도해서 가르치지만 학생들이 가르친대로 배우면 안 된다. 바람직한 방향, 도덕적인 감화, 이분법적으로 교육을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적으로 교육은 다 이용된다. 의도적으로 타자의 학습을 조직하는 것이 교육이다. 가르침에서 타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므로 권위는 중요하다. 교육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유능한 교사라도 실패할 수 있다. 교육활동은 실행을 필요로 한다. 실행의 성과는 실행 밖의 요인이 작용한다. 세계 전체가 거들어야 성공한다. 실행은 실패다. 실행은 목표 달성을 의미하는 것 아니다. 그 행위를 교육이라 부르는 것은 마땅하다. 결과가 아닌 의도가 중요한 것이다.

교육가능성 아이들의 자기 형성력 안에 교사가 들어가서 공간을 만드는 것. 학습가능성에 기대어야 한다.

1. 가르쳐지는 것으로서의 가르침

2.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인가

3. 교육의 불확실성은 교육이 실패를 무릎 쓰고 시행해야 하는 모험인데 이것을 지속시키는 자기 동기화는 무엇인가?